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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의 제3의 나이] 참 어른이 넘치는 사회는 요원한 것일까?
기사입력 2020.03.31 16:31:29 | 최종수정 2020.04.02 13:36:45
“실버 쓰나미”

루이즈 애런슨의 저서 <나이 듦에 대하여>에 보면 미국 사회가 노년층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세 가지 표현이 나온다. 그중 하나가 “실버 쓰나미”다. 이 말은 인구 고령화가 사회적 불안정을 키운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은유적 표현이다. 또 하나는 “특출한 어르신”으로 언뜻 생각하면 좋은 의미로 읽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늙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어르신이 태반이기 때문에 일상생활만 멀쩡히 해도 대단한 빈정거림을 담고 있다. 마지막 하나는 “성공적 노년”으로 질병과 죽음은 곧 실패의 증거라는 선언을 암시하는 비유적 표현이다.

“젊어 보이세요?”

“늙었다는 말이지?”

“그런 뜻은 아닌데~~~~ 요?”

나이 들수록, 말의 진위를 의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을 굳이 비틀고 꼬아서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스스로의 격을 낮춘다. 자칫 분쟁의 씨가 될 수도 있다. 사소한 것에 분개한다. 자주 접할 수 있는 표현 중엔 나이를 들먹이는 말다툼이 대표적이다

“(언성을 높이며) 너 몇 살이나 쳐 먹었어?”

“(지지 않으려고 더 큰 소리로) 왜, 나도 먹을 만큼 먹었어, 얻다 대고 삿대질이야?”

“(한대 칠 것 같은 표정으로) 뭐 삿대질,…”

그다음은 예측한 그대로다. 사실 이런 류의 다툼은 쉽게 접할 수 있다. 제삼자 입장에서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장기판에서 한 수 물러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전철에서 새치기하길래 줄 서야 한다고 예를 갖추어 말하면 오히려 어른한테 그런 소릴 한다고 나무라기 일쑤다. 그렇게 말하는 어른 중엔 인정받을 만한 어른이 없다. 완곡한 표현으론 노인이고 안 좋게 표현하면 꼰데, 연금충 소릴 듣는다.

어른이 사라졌다. 늙었다는 이유로 무시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경험과 식견 때문에 자문을 구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모두가 의지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존경의 대상, 큰 어른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노인이라는 이유로, <틀딱충>, <영감탱이>, <늙다리> 같은 언어적 비하 발언을 들어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한 상태다.

기로(耆老)

사전적 의미는 60세 이상의 노인을 이르는 말이다. 예순을 뜻하는 늙을 기(耆)와 일흔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늙을 노(老)가 합해지면서 나이가 지긋한 분들을 지칭한다. 동양 철학 박성환 교수의 저서 <조선시대 기로 정책 연구>에 기로의 무게 감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고려 말 조선 초기, 연로한 분들의 모임으로 국정의 원로 역할을 담당하면서 왕을 보필하는 기로소(정책 자문역)가 있었단다. 기로 회원들 중에는 태조 이성계가 60세에 기로 회원이 되었고, 숙종, 영조, 고종 임금도 60세를 넘기면서 기로회에 가입했다는 기록을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로는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으면서 큰 어른 대접을 받는 사람들의 집단인 셈이다.

세월이 흐른 만큼 어른을 대하는 시각도 변했다. 어른의 격이 과거와 같은 대접을 받는 시대는 아니다.

나이 들거나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고 해서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시대도 아니다. 하지만 그 옛날 기로(耆老)의 의미는 되새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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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 베이



나라엔 큰 어른이 필요하다. 식견은 물론 경험과 혜안을 갖춘 사람으로 국민적 지지와 존중을 받는 인품의 소유자가 바로 그런 분이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가족 구성원들이 인생의 기로(岐路_갈림길)에 섰을 때 경험과 지혜를 빌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이가 지극한 노인은 쓸모없는 늙은이가 아니라 직전 세대가 참고해야 할 실존하는 경험 박물관인 셈이다. 그 안엔 취할 것이 가득하다.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경험을 멀리하거나 도매금으로 싸잡아 비하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그들의 경험을 인정하고 배우려 할 때 비로소 어른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종범 금융노년전문가(R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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