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액티브시니어 매일경제 매일경제

Home > 뉴스 > 칼럼
프린트 이메일 전송 모바일 전송 리스트
[이종범의 제 3의 나이] 老人, 그들도 한때는 사람이었다.
기사입력 2020.03.26 17:20:16 | 최종수정 2020.04.13 13:19:28
인간을 상품처럼 사고파는 시대가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리 멀지 않은 시대까지 존속됐다. 서양의 경우엔 노예 제도가 그렇고, 우리나라 조선의 경우 ‘사노비’가 그 예다. 주인 맘대로 ‘매매’나 ‘양도’는 물론이고 ‘상속’이나 ‘사형’도 가능했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는 어떨까?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시대인 만큼 인간을 사고파는 미개한 짓이 사라졌을까? 천만에, 지금도 인간이 가진 능력을 돈으로 계산하여 사고파는 시대다. 다만 과거와 다른 점은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권은 매매 대상이 아니란 점이다. 또 영구적인 종속이 아니라 기한을 제한할 수 있다. 설령 상품처럼 판매 되었어도 자신이 싫으면 언제든 상응하는 책임을 지고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물론 극히 일부 국가는 예외다.

예를 들어 보자. 미국의 프로야구에서 어떤 선수는 몇 십만 달러로 살 수 있지만 어떤 선수는 몇 억 달러를 지불해야 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야구 시즌 중에도 다른 구단으로 선수를 트레이드 할 수 있다. 마치 야구 기계를 바꾸거나 되팔 듯 이해관계가 맞는 구단이 나타나면 서슴없이 선수들을 매물로 내놓는다. 행위적 개념으로 보면 사람이 곧 상품처럼 매매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에서 직원을 채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엄밀히 따지만 돈을 주고 그의 능력을 사들인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연봉이 몇 천만 원인데, 어떤 사람은 수십 억 원을 받는 일이 벌어진다. 결국엔 인간을 포함한 이 땅의 모든 사물은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사고파는 행위도 시간의 흐름 앞에선 힘을 잃는다.

단단한 쇠도 비와 바람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녹이 슬고 약해진다. 급기야는 고철 취급을 면하기 어렵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도 다르지 않다. 거친 피부와 골 주름, 검버섯이 대표적인 예다. 몸은 냄새가 나고 기억력은 쇠퇴한다. 부정확한 발음으로 했던 말을 반복한다. 특히 청력 감퇴가 두드러진다. 내적 동기도 떨어져서 새로운 도전을 포기한다. 사소한 일에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언성을 높이는 일도 잦다. 그러다 보면 점차 주변 사람들이 기피하는 대상으로 변해간다. 신체적 기능은 물론 정신적 기능까지 온전히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리면서 개인의 가치는 떨어지고 급기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쇠가 녹 슬 듯 인생도 그렇게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녹슨 퇴물처럼 변해 간다.

오근재 교수가 지은 『퇴적 공간』에 유사한 이야기가 나온다

“젊은 시절에 그들은 지식과 능력을 팔았고, 웃음과 친절을 팔았으며, 열정과 에너지를 돈으로 바꾸면서 가족의 생계를 꾸리고 자녀들의 미래에 인생을 투자했다. 그러나 짐작이나 했을까? 자신의 능력과 행위와 감성을 떼어 내 화폐로 바꾸는 순간, 그것들이 자신의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느 날 문득 늙고 쇠락해 이제는 더 이상 내다 팔 수 있는 것이 바닥나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깨달았다. 자신들이 인간으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자원’으로 분류되어 살아왔음을, 물성적 교환 가치가 소멸되는 순간 시장에서 찌꺼기처럼 폐기되었음을”

본문 0번째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들도 한때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저 노인일 뿐이다. 심지어는 NO人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들 모두는 시대의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수놓던 시절이 있었다. 노인이라는 사회적 이름표를 받아 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 말은 너무 아프게 다가온다

“물성적 교환가치가 소멸되는 순간 시장에서 찌꺼기처럼 폐기되었다”

[이종범 금융노년전문가(RFG)]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