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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의 제3의 나이] 늙음은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기사입력 2019.11.01 18:01:31 | 최종수정 2019.11.04 10:52:19
“젊어 보이세요”

심심치 않게 듣는 인사다. 듣기엔 좋은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이 들었다는 말과 닿아있다. 제 나이로 보이지 않을 만큼 젊어 보인다면 기분 좋은 일이다. 가볍게 흘려들으면 그만인데 자주 듣다 보니 진심일까, 살짝 의심이 올라온다. 이 또한 꼰대가 되어가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나이 든 사람에게 나이 들었다고 말하면 오히려 섭섭하다고 말한다. 느낌 그대로 이야기한 것뿐인데 듣는 입장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말이다. “남이 어떻게 볼까? 그 기준으로 자기를 연기하고 사니 허망하다(김지수의 인터스텔라)”는 이어령 선생의 말이 와 닿는 것도 그 이유다.

주름은 피부 위에 그어진 선으로 나이 들수록 도드라지기 시작한다. 탄력을 잃으면 팽팽하던 피부도 균형이 깨진다. 맑고 깨끗한 피부도 나이 들수록 잡티가(?) 늘어나고, 눈에 띄게 처지는 피부를 발견한다. 부정할 수 없는 나이 듦의 증거들이다. 예뻐 보이고 싶은 여자의 욕망은 처진 피부와 골진 주름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주름을 메우고 팽팽한 피부로 변신하는 시술을 받는 것도 그런 이유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남자는 다를까? 천만에, 특히 중년 남자의 얼굴을 살펴보면 유독 눈에 띄는 변화가 감지된다. 숯 검댕이 눈썹을 가진 남자들이 많다. 예상한 대로 눈썹 문신 때문이다. 필라, 보톡스를 맞는 것도 일반화된 지 오래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더 예쁘고 멋지게 보이고 싶은 욕망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없어질 수 없는 속성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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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픽사 베이



외모는 이런저런 방법으로 젊은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이는 그렇지 않다. 세상을 움직일 만큼 거대한 힘과 부를 가지고 있어도 나이 먹는 것을 막을 순 없다. 나이 들수록 거울 보는 일이 즐겁지 않다. 더 나이 들면 아이 취급을 당하기 일수다. 때론 주변 사람들의 뜬금없는 배려가 불편할 때도 있다. 스스로 할 수 있는데 배려라는 이름으로 무시당하는 느낌 때문이다.

과거엔 한 가닥 할 만한 외모와 능력을 인정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주름진 피부, 주변 사람들의 배려, 아이 취급받는 자신을 상상하지 않는다. 어쩌면 늙음이 자신에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나이 듦은 언제부턴가 부정의 의미와 연결되어 있다. 무얼 해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듣는다. 새 옷을 입어도, 헤어 스타일을 바꿔도, 새 가구를 드려도, 젊은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탐탁지 않은 구식으로 보일 수 있다.

하루는 연로하신 아버님이 당신 방을 하얀색으로 도배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방이 크지 않아서 주말에 필자가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퇴근하고 보니 당신이 직접 벽지를 바르고 있는 게 아닌가, 아내에게 물어보니 말려도 소용이 없더란다. 하루 온종일 벽지와 씨름 중이라는 것이다.

“아버지 의자에서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보세요 다리가 후들거리잖아요. 제가 할게요. 빨리 내려오세요”

투박한 어조로 아버님을 나무라듯 말하고 말았다. 하지만 속상함도 잠시, 서둘러서 도배를 끝 내는 것이 급했다. 자정이 다 돼서 겨우 도배를 마치고 샤워장에 들어갔다. 아버님에게 무심코 던진 말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아버지의 나이 듦을 자식이 무시한 셈이 되고 말았다. 당신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을 텐데 무지한 필자가 아버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박범신의 소설 『은교』에서 이적요가 했던 대사가 떠 오른다. 마치 나를 향한 말처럼 말이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이종범 금융노년전문가(R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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