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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의 제3의 나이] 밉게 보면 잡초 인생, 곱게 보면 꽃 길 인생
기사입력 2019.09.24 10:50:41 | 최종수정 2019.09.24 14:07:38
“어떤 생각을 붙잡을 것인가?” 은퇴와 관련한 필자의 강의제목이다. 얼마 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8시간을 강의할 때였다. 쉬는 시간을 틈타 교육생 한 분이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

[교육생] 어떤 때 나이 들고 있다는 걸 실감하세요?
[필자] 아이들 나이 확인할 때요. 그만큼 시간이 더 지난 거잖아요.
[교육생] 아이들이 몇 살인데요
[필자] 큰 아들이 올해 서른이고, 둘째 딸이 스물일곱입니다
[교육생]네~ 아니 그럼 강사님 나이가 몇 이신데요?
[필자]오십이 넘으면서 잊으려 노력 중인데, 잊을만하면 이렇게 생각나게 하는 분이 꼭 있네요.

곁에 있던 교육생들이 한 바탕 웃음으로 답한다 <이하 생략> 나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쉬는 시간 10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정현종의 詩,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에 보면, 글 첫머리에 후회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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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그림/픽사 베이, 글/정현종



한창 주어진 일에 함몰되면 가진 것에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때가 많다.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님에도 마치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생각을 더듬다 보면 해보고 싶었지만 하지 못하고 기억 속에 잠재워 둔 꽃봉오리들을 소환할 수 있다.

누구나 지난 것에 대해 후회하거나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기억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詩에 표현된 것처럼 일이거나 사람 또는 물건일 수도 있다. 필자의 경우는 독서와 여행 관련한 봉오리들이 기억난다. 몇 해 전부터 독서량이 대폭 늘었다. 책을 접하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주변에서 그런 말을 많이 한다.

“학교 다닐 때 지금처럼 책을 가까이했으면 서울대학이 아니라 하버드도 갔을 거예요”

물론 농으로 하는 소리지만 싫지 않게 들린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처럼 책을 소중히 했다면 정말 뭐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늦바람이 무서운 것처럼 진즉 책을 가까이하지 않았던 지난날이 아쉬운 건 사실이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이었다. 성남에서 강릉까지 무전여행을 하자고 꼬드긴 형이 있었다. 사정이 있어서 같이 가진 못했지만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시골에 대한 향수도 없이 자랐는데, 그때 무전여행을 같이 했다면 세상을 대하는 눈이 조금은 더 열렸을 텐데, 아쉬움이 큰 미련의 흔적인 셈이다.

나이가 드는 탓인지 세상 만물이 아름답게 보인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라는 詩의 첫 구절이 마음에 와 닿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 기인하는 것 같다.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이 없으되
내가 잡초 되기 싫으니
그대를 꽃으로 볼 일이로다(이하 생략)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필자는 시골이 없다. 그렇다 보니 땅, 물, 산등 자연과 관련한 기억이나 추억이 없다. 그 때문인지 가을비에 흠뻑 젖은 나뭇잎도, 우리 집 감나무 한쪽 줄기에만 감이 달린 것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감이 맺히기 시작해서 얼마 동안은 그렇게 잘 떨어지더니, 우리 딸 주먹만큼 커진 지금은, 태풍 ‘링링’이 몰아쳐도 떨어지지 않았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퇴근 후 저녁식사를 마치고 테라스에 나가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친구들이 있다. 밥 달라고 찾아오는 길 냥이 3형제다. 처음엔 다가서면 도망가기 바빴다. 이젠 도망은커녕 자기 몸을 비비며 친근감을 표현한다. 어느덧 가족이 되고 만 것이다.

늦게 철이 드는 탓일까? 글을 쓰면서 마음이 정화된 탓일까? 이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벌써 50대 후반이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후회로 남지 않는 시간을 보내려고 애쓰는 중이다. 돌이켜 보면 26세, 중소기업체의 정밀화학 실험실과 인연을 맺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정일 학원 학습 비디오와 연관된 교육 사업을 거쳐 현대해상 화재에서 보험영업을 했다. 이후 보험 교육 전문 강사로 방향을 전환하였고, 2009년, 교육 전문기관, 하이인재원에 오기까지 20여 년 이상 성인 교육을 하고 있다. 다행히 일과 관련한 후회는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할 뿐이다. 몇 해전부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후회로 남지 않는 강사의 길을 가기 위한 준비 말이다.

“40대의 10년을 질주하듯 달려왔지만 정작 어느 순간 정지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정지와 멈춤이 두려웠다. 하지만 더 먼 길을 제대로 가려면 오히려 어느 정도의 정지와 멈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은 벼락처럼 왔다. 그래서 일상의 쳇바퀴 도는 행보를 멈추고 스스로를 ‘거대한 정지’로 몰아넣기로 마음먹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 900킬로미터는 매일매일 걸어야 하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 전체에서는 실로 ‘위대한 멈춤’이었다. 더 멀리, 제대로 인생길을 나아가기 위한 ‘뜨거운 쉼표’였다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정진홍. 2012>

[이종범 금융노년전문가(R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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