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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 국민연금 왜 국민이 화를 낼까
기사입력 2018.08.21 06:01:03 | 최종수정 2018.08.21 10:4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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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매경DB

[김세형 칼럼] 국민연금 개정안이 발표되자 국민들이 단단히 화가 나서 청와대 게시판에 또 우르르 몰려가 차라리 연금을 폐지하라는 극단 언어까지 쏟아냈다. 두 개의 안(案)은 더 내고 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정이 그렇다는데 왜 화부터 벌컥 낼까.

댓글에 자주 등장하는 분노의 종류를 살펴봤더니 ①2030세대는 우린 뼈 빠지게 돈만 내고 정작 연금은 한 푼도 못 받는 거 아니냐? ②그렇게 불안할 바에야 폐지해 버리든지, 연금을 가입하고 싶은 사람만 하는 자율제로 하자 ③공무원연금은 왜 일반국민연금보다 높으냐. 국민연금과 합쳐라 ④정부가 연금 관리에 최선을 다하는지 못 믿겠다 등 4가지가 핵심이고 심지어 ⑤연금을 몰래 빼서 북한 도와주는 데 쓰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제기했다.

이러한 분노는 과연 타당성이 있으며 정부는 이런 분노를 해결하기 위한 성실한 노력을 했는지, 그리고 현행 적립식 방식 외에 다른 대안은 없는지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는 정말이지 실력 있는 전문가나 혹은 장관이 9시 TV뉴스에 나와서 몇 날 며칠이고 국민에게 설득하고 설명해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다. 대통령이 "68세에 연금을 타라니 대통령인 나도 납득할 수 없다"는 한마디에 장관은 "그 말씀이 옳다"는 식으로 맞장구쳤으니 한심하다. 영국은 연금수령 연령이 68세이다. 미국 독일은 67세이고 연금 상황에 따라 무한정 뒤로 늦출 수 있게 의회가 법을 마련해놨다. 정말로 어려운 연금 개정에서 선무당들이 설치고 그때마다 배가 산으로 가니 더욱 정부를 못 믿는 것이다.

현재의 국민연금 체제는 2007년 노무현 대통령 때 만든 보험료율 9%, 대체소득률 40%로 단계적 인하가 뼈대이다. 참고로 OECD평균은 보험료 14%(미국 13.0, 일본 17.8, 영국 25.8), 소득대체율 44%이다.

이번 4차 개선안은 국민연금을 현행대로 두면 2057년에 고갈되니 70년간은 지속될 방안을 마련해 불안감을 덜자는 것이다. 이런 방안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 비극을 담고 있다.

연장해 봤자 어차피 불행(고갈)으로 가는 파산의 티켓이며, 5년 만에 정부의 약속이 자꾸 틀려 국민의 신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요기 베라의 말대로 정말이지 미래를 맞히긴 어렵다.

암튼 연금개선방안은 다음의 두 가지가 제시됐다.

개혁안 1은 보험료를 현행 9%에서 11%로 즉각 올리고, 2034년에 가서 12.31%로 다시 인상한 다음 5년 단위로 재계산하여 꾸준히 인상하자는 것이다. 평생 일한 동안 받은 평균급여(소득대체율)의 45%를 받는다.

2안은 예정대로 대체율이 40%로 하락하여 1안보다 5%포인트 덜 받는다. 보험료는 당장 올리는 게 아니라 단계적으로 13.5%까지 올라간다. 연금을 받는 시기는 65세(2033년 기준)에서 66세, 67세 구간을 더 정해서 늘린다.

대통령이 공약으로 대체율 50%를 내놨고 여기서 용돈 수준 연금이란 딱지를 붙이기 싫으니 1안이 채택될 공산이 크다. 그러면 월소득 300만원인 사람은 개인이 1%, 회사가 1%씩 더 내니 3만원가량 오르는 것이다.

올해 25세에 입사한 여직원을 예로 들면 정부가 64세로 가입 상한 연령을 높여 놓으면 40년간 가입한 게 되고 2058년 이후 죽을 때까지 월 300만원 이상 받을 것 같다. 현재가치 이 정도면 괜찮은데 왜 화를 내고 폐지해버려라는 저주까지 퍼붓는 것일까.

내가 보기엔 젊은 층의 분노는 현재의 청년실업, 결혼하기 어려운 여건, 저성장과 저출산 등을 다루는 정부의 무능이 한꺼번에 상승작용을 일으킨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우선 정부가 발표한 추정치 자료들이 5년 만에 너무 큰 속임수처럼 틀려버린 게 화근인 듯싶다. 5년 전 3차 연금개혁 당시 연금잔액은 2043년 2561조원이 피크(peak)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부(富)의 크기에 국민은 배가 부르고 든든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수정된 숫자는 2041년 1778조원으로 하루아침에 783조원이 쪼그라들었다. 무려 44% 폭락해버렸는데 사과도 설명도 없다. 그것이 정부의 일하는 방식이다. 그뿐인가. 출산율, 평균수명, 투자수익률 등도 아무리 미래를 못 맞힌다고 하지만 5년 만에 너무 쪼그라들고 그마저 믿음이 안 간다.

출산율은 5년 전에는 1.45명이라는 통계치를 쓰더니 이번에는 2020년 1.24명을 거쳐 2040~2088년 1.38명의 숫자를 제시했다. 현실은 서울이 1.0명이 안 된다. 그런데 왜 1.38명을 썼냐고 물으면 통계청이 그런 자료를 내서 기계식으로 갖다 얹어놨다는 것이다. 누가 믿겠나. 평균수명 추정치도 이번에 남자 90세, 여성 93세로 5년 전보다 열 살쯤 올라갔다.

국민연금기금 잔액은 현재 634조원인데 이 가운데 돈을 잘 굴려서 벌어들인 규모가 304조원이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원본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재테크를 할 실력만 있다면 기금 고갈은 다른 문제가 된다. 한국의 연금은 1988년부터 작년까지 평균 5.52%의 복리수익을 거뒀다. 선진국들의 최근 10년간 연금 운용실적을 보면 캐나다 7.9%, 네덜란드 6.9%, 노르웨이 6.7%로 한국보다 훨씬 높다. 국제적으로 최우수 프로축구선수 스카우트에 1000억원대가 넘는 비용을 들이지만 연금을 운용하는 재테크 귀재를 스카우트하거나 양성할 수 있다면 1조원을 들여도 아깝지 않다. 그런데 이번 4차 연금개선안을 보면 수익률 목표를 대략 4.5% 수준으로 잡아놓고 국내 채권보다 해외 채권을 사라는 정도만 이야기하고 있다. 그나마 올해는 1%대 수익율도 안될 처지고 기금운용본부장은 1년이상 공백이다.

도통 최대 수익률을 내겠다는 각오도, 의지도 안 보인다. 그리고 엉뚱한 짓만 하려고 든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운용본부 내에 전문가들로 구성된 의결권전문위원회를 폐지하고 수탁자책임위원회를 새로 만든다며 노동계 지역단체에 인물을 추천해달라고 한다. 재벌의 상속과정을 감시하려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며 경영참여를 통해 표대결로 한판 붙어야 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국민연금은 어떻게 하면 돈을 벌어 미래세대 국민의 노후를 넉넉하게 보내도록 최선을 다할까에 혼신의 힘을 다해도 모자랄 터에 수익률 제고에는 관심 없고 연금사회주의로 바꾸는 도구로 활용하려는 속셈이다. 국민이 열불 날 일이다.

종합적으로 3차와 4차, 불과 5년 만에 기금총액, 출산율 추계, 평균수명, 기금수익률 등등에서 천양지차가 난다.

그러니 정부가 국민연금을 제대로 다루고 있는지 믿음이 떨어지고 그것이 국민의 분노로 표출된 것이다.

이번에 4차 개선안을 확정지을 때는 국민연금을 최소한 정치놀음에서 떼놓아야 한다. 정권을 보수, 진보 누가 잡든 철옹성처럼 굳건한, 헌법재판소처럼 그렇게 독립성을 확보하란 얘기다. 국회는 불을 켜고 이 과업을 완수하라. 지금처럼 복지부 소속으로 좌파 입김에 흔들리고, 청와대가 입김을 쏘면 장관은 굽어 살피소서 그런 식으로 한다면 연금폐지론을 외쳐도 나무랄 수 없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합치란 얘기는 어떻게 볼까. 공무원연금액을 보면 30년간 봉직한 중앙부처 국장급만 해도 400만원이 넘는다. 그러니 일반국민으로선 배 아플 만도 하다. 그런데 공무원은 보험료율이 18%로 국민연금의 9%보다 배나 많고 연금 상한액도 835만원으로 국민연금 468만원보다 훨씬 많다. 박근혜정부 때 공무원연금을 개정하면서 신규 공직자의 경우 국민연금보다 나을 게 없어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매년 예산에서 1조~2조원씩 보조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미국 일본 등이 그래서 국민-공무원연금을 통합했다. 한국도 그렇게 해버리는 게 옳다.

국민연금의 종류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기금(fund)방식이 있고 영국 독일 중국 같은 부과방식(pay-as-you-go)으로 대별된다. 기금방식은 적립해 놨다가 상한연령(한국 59세)이 넘으면 62세(현 한국)부터 받는 방식이다. 부과방식은 그해에 일터에 있는 근로자가 연금을 내면, 은퇴자들이 받는다. 생애평균소득의 얼마를 받느냐(소득대체율)는 한국의 경우 45%(2028년까지 40%로 하락)이고 미국은 38.5%로 한국보다 낮다. OECD 평균은 44%로 한국과 비슷한데 유독 우리만 `쥐꼬리 수준`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공짜 좋아하는 좌파들의 한심한 프레임이니 따라 할 게 못 된다.

김용하 교수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2100년 인구는 2002만명이다. 이 가운데 908만명이 65세 이상이다. 간단하게 말해 노인 900만명, 그 이하 1100만명이다. 그러므로 국민연금은 세대전쟁이 되기 십상이다. 국민연금 안에는 소득재분배 가능까지 넣어 자신이 넣은 돈에 비해 저소득층은 최고 4.7배, 그리고 상대적 상위층은 1.4배를 받게 돼 있다. 평균적으로는 1.8배를 받는다. 연금에 소득재분배 기능까지 넣을 필요가 있을까. 선진국들과 비교해서 합리적으로 고칠 여지가 있으면 고치고 소득재분배는 다른 복지로 다루면 된다. 연금은 오로지 낸 만큼 받는다는 정신이 가장 국민에게 신뢰를 줄 것이다. 그 대신 2층, 3층으로 개인연금, 기업연금을 쌓으면 된다.

이번엔 만약 연금을 폐지해버리면 그다음 뭐가 올까? 이번에 연금개선위원장을 맡은 김상균 교수는 "그것은 사회적 자살행위"라고 말한다. 깊어지는 불평등사회에서 기본소득(UBI)으로 가는 대안이 없다면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 될 것이다. 이글의 첫머리에 연금은 태생적으로 불행의 열차라고 했다.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창안하고 영국의 베버리지가 케인스의 도움을 받아 탄생한 연금은 인간수명이 60세도 안 될 때 설계됐다. 그러다 인간사회가 달라지니 문제가 생긴 것이다. 가령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호모데우스로 가면 수명이 500년을 넘어 영원이 될 터인데 그게 현실화되면 연금은 뭐가 되는가. 그냥 사기다.

현대는 불확실성의 시대다. 인구가 줄고 고령층이 늘고 수명마저 늘어난다면 70년 앞을 내다봐야 하는 적립(fund)방식은 갈수록 어렵지 않을까. 차라리 그해 거둬서 그해 결산하는 뉴질랜드 방식이 우수할까. 칠레는 그렇게 했다가 잘 안 돼서 다시 기금식으로 선회한다고 하는데….

4차 개선위가 제시한 1, 2안은 시야가 좁아 보인다. 토론의 폭, 시야의 폭을 우주만큼 넓혀 솔로몬의 결론을 내기 바란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다. 아베 행정부는 최근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의 린다 그래튼(Lynda Gratton)이 장수와 사회변화에 관해 저술한 100세 인생(The 100-Year Life)이라는 책자를 연구하여 사회시스템에 구현하기에 바쁘다. 일본 정부는 연금, 인구문제에 대해 골머리를 썩였는데 이 책을 발견하자 전깃불이 번쩍 들어온 것처럼 환호하는 분위기라고 FT는 보도했다. 고령사회를 경제적으로 재설계하는 것이 내용이다. 이 책의 주제는 개인, 기관, 정부, 금융, 사회인프라, 인간 대다수가 100년을 사는 세상에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를 묘사하고 있다. 쉽게 말해 건강하고 일할 의욕과 지식이 넘치는 65~80세 노인까지 근로현장으로 다시 데려오는 이야기다. 그러면 국민연금에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불행의 열차가 행복의 철로를 놓을 수 있다는 새 차원의 얘기다. 문재인정부에 그런 이론을 도입하는 참모는 없는가.

[김세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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