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senior

Home > 뉴스 > 생애설계 칼럼
프린트 이메일 전송 모바일 전송 리스트
[윤형식 기자의 설레는 은퇴, 두려운 은퇴] 90세 노인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기사입력 2013.03.05 09:38:35
‘나이 든 사람은 행복해야 할 책임이 있다.’

요즘 읽고 있는 ‘노년 예찬’이라는 책의 부제라 할 수 있는 글귀다. 프랑스 작가가 쓴 글인데 프랑스에서 활기차게 노년을 맞이하고 있는 사례들을 여럿 소개하고 있다.

빈곤과 노화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는 우리나라 노인들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60~80대 여성들은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80세 이상 여성 노인들은 지난 5년 동안 우울증 환자가 연평균 8.2% 증가해 전 연령층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우연히 손에 잡힌 ‘노년 예찬(정은문고, 옮긴이 심영아)’의 저자는 70세가 넘는 프랑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콜레트 메나주. 그는 90세가 넘는 노인들을 인터뷰해 책을 만드는 신선한(?) 발상을 했다.

90세가 넘어선 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얼마 전만 해도 불가능해보였던 90대라는 나이를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담담하면서도 진솔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쓴 작가는 어느 날 아침 문득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럭 겁이 났지만 이제 온 몸에 노화가 퍼져있다는 사실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어느 날 찾아온 노년을 어떻게 관리할지 궁금해지자 70세를 넘긴 주변의 사람들에게 ‘노인’에 대해 들어 볼 요량으로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다들 인터뷰를 꺼렸다고 한다.

그들이 인터뷰를 거부한 것은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적어도 90살은 넘겨야 노년이 시작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90줄에 접어든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콜레트 메나주가 만나 인터뷰한 사람 중에는 프랑스 베테랑 외교관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분노하라`의 저자 스테판 에셀도 있다.

그의 인터뷰가 실린 부분쯤을 읽고 있을 때 스테판 에셀이 95세의 나이로 편안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외신이 들어왔다.

스테판 에셀은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350만권이 팔린 2010년 작 `분노하라`와 2011년 작 `참여하라` 등의 작가로 널리 알려졌다.

2차 대전 때 그는 드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에 합류해 독일 나치에 맞서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외교관이 됐으며 1948년 유엔 세계 인권 선언문 초안 작성에 참여했다.

에셀은 젊은이들에게 사회 양극화, 외국 이민자에 대한 차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금권에 저항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이며, 인권을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들에게 기꺼이 힘을 보태야 한다고 독자들에게 호소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콜레트와 인터뷰에서 “조금 과장하자면 이제는 죽음에 대한 끌림, 죽고 싶은 욕망만이 남았다. 내일 당장 죽고 싶다는 뜻은 아니지만 삶이 완결되는 단계에 이르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말처럼 실천한 것 같기도 하다.

브누아트 그루는 1920년생이다. 베스트 셀러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 페미니즘 월간지인 ‘F.메거진’을 창간하고 직업세계의 남녀평등을 위한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베르트랑 위페는 1918년생으로 디자이너 겸 의류사업가이다. 은퇴 후 지역문화 사업에 일조를 했으며 지금은 요양원에서 브리지 게임을 하면서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메니 그레구아르는 1919년생으로 유명한 방송 진행자이자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그의 프로그램은 정신분석을 대중화했으며 가족과 연인문제를 비롯해 동성애 같은 까다로운 성 문제를 대담하게 다룬 것으로 유명하다.

르네 부네 드 몽벨은 1917년생으로 산부인과 의사로 퇴직 후 ‘난민수용 연대 모임’의 의사로 활발한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의 속살을 살짝 들여다보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이들은 나이를 먹는 것은 ‘완만한 내리막 길’이라기보다는 ‘층계를 내려가는 것’처럼 분명한 단계를 느꼈다고 응답한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늙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는 의미다.

1917년생인 르네 부테 드 몽벨은 “오른쪽 안구 신경통으로 한 계단 내려왔으며 심장이 나빠 받은 수술이 두 번째 계단이다”고 말한다.

본문 0번째 이미지
또 그들의 행동에서 느끼는 공통점은 90세가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적인 활동이다. 저작활동과 강연 등을 지속적으로, 그러나 자신의 체력에 맞게 유지하는 것은 물론 각종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이들은 70세 때까지는 자신들이 노년이었다는 생각을 결코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19년생인 메니 그레구아르는 아주 최근에야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것을 끝냈으며 새로 발간한 책을 홍보하려 이곳저곳 다니르라 매우 피곤하다고 말한다. 그는 “삶을 계속하기 원한다면 스스로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안 그러면 추락하고 만다.”고 밝혔다.

그는 “노년은 정상적인 과정이며 살아내야 함을 알기 때문에 나이 들었단 사실이 슬프진 않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노년에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무궁무진하다. 어쩌면 이 주제를 가지고 책을 쓸지도 모르겠다.”고 의욕을 불태우기까지 한다.

90세를 훌쩍 넘긴 연세에 아직도 그렇게 많은 궁금증을 갖고 있으며 긍정적으로 자신을 관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1920년생인 브누아트 그루는 60대와 70대 때만 해도 한물간 인사로 취급받았지만 그런대로 잘 지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또 80세에서 90세까지는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오히려 90세가 넘으면 사람들에게 일종의 호기심을 유발한다고 말하는 폼새가 매우 유머러스하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멋진 남자를 보면 속으로 ‘예전 같으면 저 남자를 한번 사귀어 볼만 하겠는데’ 중얼거린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그는 20년 전부터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위한 모임(ADMD)에 가입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80세까지 만도 영영 죽지 않을 것 같았으나 90세가 넘어서야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받아들이게 됐다”고 고백한다.

프랑스에서 잘 나가던 저널리스트, 방송기자, 의사였기에 이들이 행복한 노년을 누리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들이 노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조화롭게 생활하는지는 많은 도움을 준다.

우리나라에도 물론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은 노인들에게는 아직 매우 불행한 나라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얼마 전 OECD 30개 회원국의 공공사회복지지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총생산에서 노인에게 돌아가는 복지지출 비중은 최하위권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노인복지지출 비중은 1.7%로 1.1%를 기록한 멕시코 덕에 꼴찌를 면했지만 OECD평균(6.8%)의 4분의 1수준에 불과했다.

이탈리아는 11.6%, 오스트리아는 10.8%의 비중을 차지했다.

65세 이상 노인가구중 중위가구소득(전체가구를 소득 순으로 일렬로 세웠을 때 중간에 있는 가구의 소득)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비율을 뜻하는 노인빈곤율은 한국이 45.1%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뉴질랜드는 노인빈곤율이 1.5%로 가장 낮았다.

우리나라는 노인 소득이 매우 불평등한데다 국가가 노인에 대한 복지지출도 적게 하다 보니 가난한 노인들이 많은 것이다.

‘나이 든 사람은 행복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데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개인의 노력만으로 풀기 어려울 때는 국가나 사회가 나서야 할 것이다.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노인복지 지출에 대한 획기적인 발상전환을 기대한다.

[윤형식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