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액티브시니어 매일경제 매일경제

Home > 뉴스 > 칼럼
프린트 이메일 전송 모바일 전송 리스트
[이종범의 제3의 나이] 퇴직 후,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
기사입력 2020.06.26 14:08:41 | 최종수정 2020.07.09 09:53:12
“어떤 선물이 좋을까요?”

“아버지가 몇 년이나 일하셨니?”

“한 삼십 수년 정도 될 거예요”

“아버지 근속연수를 알아내서 그만큼 돈 꽃다발 같은 건 어떨까?”

“좋긴 한데, 제가 돈이…”

“사회 초년병이니까 많은 돈은 그렇고, 천 원짜리, 만 원짜리를 적당히 섞어서 만들어도 될 것 같은데”

“음 … 그럴까요? 거기다가 진짜 꽃다발과 편지를 더하면 되겠죠?”

“그럼 사랑하는 딸의 마음이 중요하지 돈이 중요한가”

“ㅎㅎ 알았어요. 그럼 가볼게요”



퇴직하는 아버지를 둔 여직원이 오전 반차를 마치고 퇴근하면서 동료들과 나눈 이야기다. 그렇지 않아도 퇴직 후 혼자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칼럼을 쓸 생각이었는데, 우리 여직원이 글 서두를 대신 써준 느낌이다.

퇴직 전에는 매사에 혼자 하는 일보다는 같이 하는 일이 많다. 밥, 술, 커피를 마실 때는 물론이고 여행을 떠나도 가족, 친구, 지인, 동료 등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언제든 전화 한 통이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굳이 혼자 있는 시간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런 일상의 패턴은 퇴직과 함께 많은 변화를 맞는다. 



노년에 관심이 많다 보니 여러 퇴직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은 편이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많은 변화들 중에서도 일정표에 관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월간 일정표에 해야 할 일과 약속으로 빼곡했던 은퇴 전과는 달리, 은퇴 후의 일상은 한가 하다 못해 심심한 일상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책임지고 할 일이 없고, 약속할 일도 줄어서 마치 무인도에 홀로 버려진 듯, 외로움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래서일까, TV를 보면서 하루를 때우는 일상이 많아지고, 만날 사람이 줄다 보니 외모를 가꾸는 일도 뒷전이란다. 시간에 쫓기며 움직일 필요가 없는 만큼, 시간관념도 무뎌지고 전반적으로 게을러진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한결같이 하는 말 중에 퇴직 후 2~3개월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그 이상 지나면 노는 것도 흥미를 잃는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곳저곳 기웃거리기 시작하고,뜻대로 안 풀리면 그때부터 초조해지면서 이러다가 죽도 밥도 안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필자가 만났던 퇴직자 중 다수는, 퇴직 후 일상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심도 있게 고민하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하면서 먹고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일은 있지만,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계획하는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년 내에 퇴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시간적으로 넉넉해진 일상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미리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령 귀농을 원한다면, 하다 못해 주택에서 조그마한 고무 통 몇 개 준비해서 각종 채소류를 키우는 것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그런 경험도 여러 해 쌓이다 보면 오이는 진딧물이 극성이고, 가지는 물만 잘 주면 특별한 관리가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방울토마토도 그렇고 깻잎이나 고추도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다. 다만 무수하게 자라는 잡초들을 제거해야 하고, 또 겨울맞이 차원에서 마른 가지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다음 해에 일거리가 많아진다는 것도 경험할 수 있다. 

본문 0번째 이미지

자료: 픽사 베이







필자도 은퇴 후를 대비해서 경험하는 차원으로, 주택 옥상에서 10년째 채소류를 키우고 있다. 퇴근 후 저녁 시간을 이용해서 하고 있는데, 길이가 약 60cm, 지름은 약 50cm 정도의 고무 통 5개와, 길이 2m, 폭 60cm, 높이는 약 1m 남짓 되는 3개의 화단에 고추, 깻잎, 청 상추와 적 상추, 가지, 방울토마토, 치커리와 샐러드를 키우고 있다. 그리고 철을 바꿔가면서 오이도 키워보고, 호박과 포도도 키웠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래서 작년부터는 오이, 호박, 포도는 키우지 않는다. 화초류도 적지 않아서 베고니아만 100 송이가 넘는다. 가격이 싸고 꽃 피는 기간이 긴 탓에 가성비만큼은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꽃이다. 그 외에 작약, 나팔꽃, 수국, 분꽃, 과꽃, 하늘매발톱과 금낭화, 능소화, 치자, 풍란, 라일락, 그 외에 이름도 희귀한 갖가지 꽃을 심고 가꾼다. 게 중에 일부는 매년 씨를 받아서 뿌린다. 아버지가 묘목으로 심었던 감나무는 지금 약 25년 정도 되는데, 해마다 대봉 감 70여 개를 생산하고 있다. 거기다가 실내에서 키우는 작은 화분 식물들까지 합하면 수십 종의 꽃과 야채 그리고 나무를 가꾸는 셈이다. 이런 일은 주로 퇴근 후에 하지만 주말을 보내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주로 집 앞 카페에서 글을 쓴다. 어쩌다 보니 몇 군데 칼럼을 쓰게 되었고, 강아지 두 마리의 방해를 피할 공간으로 카페를 낙점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 시켜놓고 즐거운 마음으로 글을 쓰며 보낸다. 각종 야채와 꽃, 그리고 나무를 가꾸는 지난 10년도 그렇고, 본격적으로 글을 쓴 약 4년의 시간을 돌아볼 때, 내 적성과 잘 맞는 일인 것 같다. 이런 일상은 퇴직 후에도 계속할 생각이다. 글이 길어졌지만 마지막으로 은퇴를 앞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서광원 작가가 그의 책, <시작하라 그들처럼>에 쓴 글인데 내용은 이렇다. 



“진짜 해야 할 일이란 지금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죠. 나이가 들어서도 현장을 떠나서도 그 연장 선상에서 할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찾았어야 했는데 저는 지금 아침에 일어나면 ‘할 일’이 없어요.

[이종범 금융노년전문가(RFG)]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