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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의 제 3의 나이] 거죽은 늙어도 중심은 새롭게
기사입력 2020.06.08 09:59:50 | 최종수정 2020.06.12 13:12:01
나이 들지 않은 척하는 사람들이 많다.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 염색을 하는 것도 그렇고, 늘어진 피부가 부담스러워 보톡스나 필러 시술을 받는 것도 그중 하나다. 젊어 보인다는 말은 그 나이에 맞지 않게 관리를 잘했다는 뜻도 있지만, 나이 들었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현대사회는 나이 듦에 대한 직설적 표현을 부담스럽게 받아들인다. 어떤 식으로든 조금이라도 젊게 보이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이는 호칭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아저씨나 아줌마로 불려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선이 그어지는 것이 싫어서다. 그보다는 형님이나 누님, 오빠나 언니 같은 표현을 좋아한다. 조금은 더 젊은 이미지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내와 딸이 함께 쇼핑을 마치고 돌아와서 내게 자랑을 한다. 체형이 비슷해서 가끔은 서로의 옷을 빌려 입기도 하는데, 그날도 딸아이가 고른 옷을 아내가 입어본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점원이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단다

“동생도 예쁜데, 언니도 잘 받는 것 같아요”

졸지에 엄마에서 언니가 된 것이다. 엄마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은 것이 그렇게 좋았을까? 집에 들어 오기 무섭게 자랑을 늘어 놓는다. 하긴 젊어 보이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외모 관리와 관련해서 아내가 내게 특별히 주문하는 것이 몇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유독 강조하는 것이 체형과(특히 뱃살 관리) 눈썹 관리다

아내는 내게 강사는 살이 찌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뚱뚱한 모습으로 강단에 서는 것은 교육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뱃살이 도드라지게 나오는 것은 더더욱 안된다고 말한다. 자기 관리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가르치냐는 논리다. 물론 개인 생각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논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가만히 듣고 보니 전혀 빗나간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살을 빼게 하려는 아내의 교묘한 화법일 수 도 있지만, 타인의 삶에 직,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강사의 특성상, 자기 관리는 더없이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한 주문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수년 전부터 아내는 내게 눈썹 문신을 제안했다. 차일피일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미뤄왔는데 더이상은 무리일 것 같아 두 달 전부터 문신을 시작했다. 사실 아내는 눈썹 문신 전문가다. 하지만 십여 년 전부터는 그 일을 하지 않는다. 손이 떨리는 느낌 때문에 더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해서 일을 접은 상태다. 하지만 남편의 눈썹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놓아두었던 문신 도구를 다시 잡으면서 이런 말을 한다.

“열 번으로 나눠서 조금씩 하면, 주변 사람도 모를 만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요”

사실 필자의 눈썹은 남자치고는 너무 얇고, 선이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눈썹 숱도 적어서 눈의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주변 사람도 모르게 할 수 있다는 말에 용기를 냈고, 그렇게 시작된 눈썹 공사(?)는 지난 주말, 다섯 번째 문신을 마친 상태다. 공사를 마치고 거울을 볼 때마다 눈썹이 조금씩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 눈이 안경이라 그런지 조금은 더 젊어진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타인에게 젊게 보이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다만 그 정도는 중요하다. 무리한 성형 수술을 반복하거나 각종 시술을 즐겨한 탓에 얼굴이 무너져 내린듯한 인상이 적지 않아서다. 특히 연예계 종사자들을 볼 때면 더욱 그렇다. 한창 잘 나갈 땐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했지만, 세월이 흐르고 대중들에게 잊히기 시작하면서, 자기 관리도 소홀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SBS <불타는 청춘>을 보고 있자면 그런 생각이 더한층 느껴진다. 젊을 땐 브라운관의 주역으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을 만큼 예쁘고 잘생긴 청춘들이었는데, 나이 들어 접한 그들의 모습은 필자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그들의 외모에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다. 이젠 예쁘거나 잘 생겼다는 표현보다는 완숙하거나 노련 하다는 표현이 더 걸맞지 않을까 싶다.

법정스님의 글 중에 <중심에서 사는 사람>이란 글이 있다.

거죽은 언젠가 늙고 허물어진다
그러나 중심은 늘 새롭다

영혼에는 나이가 없다
영혼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그런 빛이다

어떻게 늙는가가 중요하다
자기 인생을 어떻게 보내는가가
중요하다거죽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중심은 늘 새롭다

거죽에서 살지 않고
중심에서 사는 사람은 어떤 세월 속에서도
시들거나 허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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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픽사 베이



인생 100년, 화려하게 빛나는 외모를 지닐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그래서일까 시대를 앞서간 선인들은 화려함에 취하지 말라고 말한다.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중심에 사는 사람일 필요가 있다. 거죽은 어찌할 수 없어도 중심은 나이 듦과 상관없이 얼마든지 가꿀 수 있으니 말이다.

[이종범 금융노년전문가(R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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