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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의 제3의 나이] 내 얼굴엔 어떤 마음이 투영되고 있을까?
기사입력 2020.05.13 18:02:50 | 최종수정 2020.05.14 09:30:38
TV에서 귀에 익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레베카>다. 언제 들었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까마득한 추억의 노래가 멋진 중년 양준일에 의해 다시 소환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대한 필자의 기억은 앳된 미소년, 파격적인 의상, 마이클 잭슨이 연상되는 춤. 단조롭지만 중독성이 강한 리듬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기나긴 시간 여행 끝에 만난 양준일은 필자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청년 양준일을 지워 버릴 만큼 멋있게 다가왔다. 앳된 미소년에서 성숙한 중년으로 나타난 것이다. 노래를 마치고 공백 기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생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그의 얼굴은 밝다 못해 빛이 났고, 세월이 비껴간 듯한 춤사위에선 나이 듦이 느껴지지 않았다. 곱게 나이 든다는 말이 이런 것일까, 내 눈을 의심할 만큼 그의 모습은 신선했다.



사람의 얼굴은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창과 같다. 그 사람의 희로애락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60세 은퇴를 기준으로 하루에 한 번만 찡그려도 60년이면 이만 번이 넘는다. 적지 않은 숫자지만 찡그리는 횟수가 두 번이면, 사만 번, 세 번이면 육만 번 이상 찡그린 셈이다. 그렇다면 미세한 주름도 선명해질 수 있다. 물론 웃음도 마찬가지다. 많이 웃으면 리즈시절처럼 예쁘진 않아도 나이에 걸맞게 포근한 주름을 만들 수 있다.



찡그린 얼굴도, 미소 짓는 얼굴도 따지고 보면 마음 흐름에 기인한다. 지금 내 안에 흐르는 마음이 불편하면, 드러나는 표정도 같은 맥락으로 반응한다. 반대로 마음이 즐거우면 얼굴은 밝아지기 마련이다. 물론 불편한 마음을 밝은 미소로 치장할 순 있다. 하지만 일시적일 뿐, 지속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 얼굴은 이제까지 살아오는 동안 내 안을 적셨던 마음결이 만든 결과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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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픽사 베이





꽃이나 화초를 키워보면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은 화초 키우는 법을 배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잘 키우는 반면, 잘 자라던 화초도 이내 죽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무슨 차이 때문일까? 좋은 의도가 담긴 긍정의 말은 식물을 더 잘 자라게 한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좋은 말은 애정 깃든 관심의 표현이다. 그런 말을 듣고 자란 화초가 훨씬 더 잘 자란다는 것이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여타 동, 식물처럼 살아있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다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얼굴이 마음의 거울이라면 내 얼굴엔 어떤 마음이 투영되고 있을까?”



류시화 작가가 엮은 책 중에 법정 스님의 잠언집(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을 넘기다 보면 이런 문장을 만날 수 있다.



“안으로 살피는 일에 소홀하면 기계적인 무표정한 인간으로 굳어지기 쉽고, 동물적인 속성만 쌓여가면서 삶의 전체적인 리듬을 잃어버린다” 



주어진 삶에 함몰되면 나 자신을 살피는 일도 소홀해진다. 먹고살기도 힘든 판에 내가 누구인지 질문하고 답하는 철학적 소양은 사치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는 촉이 발달한다. 젊었을 땐 눈 길 한 번 주지 않던 것들도, 나이 들수록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일이 많아진다. 그렇다면 철학자가 되고 싶어 되는 게 아니라, 세월이 철학적 소양을 키우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저분한 거울도 닦아주면 새것이 되듯, 마음의 거울인 얼굴도 닦아주면 깨끗해지지 않을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훈련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스님들처럼 산중 선방의 참선은 아니더라도, 내 삶에서 마음을 닦을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은 필요하다. 짧은 경험이지만 글쓰기 방도 좋은 예다. 나만의 특정 공간에서(ex: 서재, 카페..), 나를 주제로 하는 글 쓰기를 해 보면, 내 안에 어떤 마음이 흐르는지 발견할 수 있다. 조금 더 심도 있는 몰입이 일어나면,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알아채고 스스로 충만해지는 느낌도 경험할 수 있다. 

슈가맨으로 소환된 양준일의 얼굴에서 선한 마음이 읽혔다. 비단 필자의 눈에만 그렇게 보였을까? 긍정적인 생각은 밝은 표정을 만든다. 그렇다면 가는 세월에 미련 두지 말고, 오는 세월을 값있게 맞이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기 성찰의 시간을 늘리는 것을 어떨까?

[이종범 금융노년전문가(R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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