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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의 제3의 나이] 달력도 필요 없다. 시간밖에 살 테니까
기사입력 2020.04.27 09:14:40 | 최종수정 2020.04.28 10:46:59
도심을 벗어나 자연의 삶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필자도 그중 한 사람이다. 나이 들수록 흙과 꽃 그리고 각종 채소와 이름 모를 나무들까지,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진다.

지난주엔 목, 금 이틀간의 휴가를 보태 나흘간 휴식 시간을 가졌다. 베란다 바닥 무늬 목에 오일 스텐도 칠하고, 작년 이맘때까지 사용하다가 묵혀 두었던 원목 식탁을 분해해서 3인용 의자 두 개도 만들었다. 두 평 남짓한 외부 창고도 정리했다. 톱, 망치, 못 통, 각종 공구들, 두서없이 널 부러져 있던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나니 하루 해가 저물었다.

이튿날, 헌인릉 화훼단지를 찾았다. 꽃을 좋아하는 아내와 함께 매년 봄이면 연례행사처럼 찾는 곳이다. 2011년부터니까 벌써 10년째 꽃 맞이 외출인 셈이다. 가정집치곤 많은 양의 꽃을 구입하다 보니 당골 화원도 생겼다. 화원 주인장은 우리 부부를 보면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베고니아 나왔어요”

올해는 12개들이 베고니아 한 박스에 6,000씩 판매하고 있었다. 작년엔 8,000원에 구입했는데 올핸 2,000원가량 싸졌다. 조금 이르게 방문한 탓인가 보다. 아내는 6박스를 고르라고 말한다. 개수로는 72개다. 10개의 직 사각형 화분에 베고니아를 6개씩 심고 나면 남는 게 별반 없다. 36,000원을 지불하고 4월부터 늦가을까지 피고 지길 반복하는 꽃을 보노라면 베고니아의 가치는 36,000원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한 여름 뜨거운 땡 볕에 말라비틀어지지 않게 물 주는 것이 일이라면 일이다. 그 외엔 알아서 피고 진다. 생명력이 강해서 그런지 따듯한 봄날부터 뜨거운 여름 불 볕을 넘어, 찬 바람이 불어오는 늦가을까지 붉은색을 유지하며 버텨낸다. 요즘 날씨가 쌀쌀하고 밤과 낮 기온 차가 심하다 보니 한 주 후에 심기로 하고 일주일 정도 관리할 생각이다.

토요일, 점심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강아지(뽀돌이와 미소)들이 좋아하는 남한 산성 아래 자락 야산을다녀왔다. C19 때문인지 매우 한적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많았다. 그중 호롱 주머니를 닮은 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 이름을 많이 알고 있는 아내에게 물어보니 무슨 꽃인지 모른단다. 네이버에 묻는 게 좋겠다 싶어 검색해 보니 “자주괴불주머니”였다. 향도 진하고 여기저기 두서없이 버려진 듯 피어서 그런지 괜한 흑심이 발동했다. 무엇보다 꽃 말이 <보물 주머니>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아쉬운 대로 강아지 배변 봉투에 서 너 송이를 깨서 담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금낭화>, <하늘매발톱>을 마주 보며 살 수 있게보물 주머니(자주괴불주머니>를 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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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 베이



하루는 또 그렇게 지나갔다. 간다는 기별도 없이, 가는 듯 마는 듯 눈치채지 못하게 말이다. 법정 스님 잠언집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다_산에 사는 산 사람 中에서>에 이런 글이 실려있다

“달력도 필요 없다. 시간밖에 살 테니까”

나흘간의 휴가는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목, 금, 토 3일은 흙과 꽃, 그리고 나무와 함께 보낸 시간이었다. 구글 캘린더에 잡힌 스케줄도 보지 않았다. 시간도 중요하지 않았다. 배고프면 라면에 밥 한 덩어리 말아서 김치 반찬이면 족했다. 법정 스님 말대로 시간 밖에서 살았던 것 같다. 통 트면 시작이고, 해 지면 끝나는 하루,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 가는 데로 보낸 소소한 일상이었다.

돌이켜 보면 임금 피크가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주말은 흙, 꽃, 채소, 나무, 그리고 글쓰기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타인과의 대화보다는 자신과의 대화 시간이 늘었다고 할까? 농부는 아니지만 흙이 좋았고, 원예는 모르지만 꽃과 채소를 가꾸는 소일이 즐거워졌다. 나무를 보는 시각도 예전 같지 않아서 지난가을 감나무 가지를 잘라주면서 아프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올핸 아직, 움트는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너무 심하게 잘라서 몸 살을 알고 있는 것일까? 걱정이다.

법정 스님의 표현처럼 山(자연, 흙, 나무, 꽃)은 시간 밖의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나 보다. 도심에서처럼 시간에 갇혀 살지 않아도 될 만큼 마음 공간이 넉넉해진 때문일까? 앞으로도 시간 밖에 사는 삶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종범 금융노년전문가(R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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