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액티브시니어 매일경제 매일경제

Home > 뉴스 > 칼럼
프린트 이메일 전송 모바일 전송 리스트
[클로즈업] 코로나 공포를 지운 노장의 예술
기사입력 2020.04.18 00:04:01 | 최종수정 2020.04.22 17:06:42
지하철을 타면 노약자석이 텅 비어 있다. 코로나19의 공격에 가장 취약한 연령층이기 때문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문화예술 거장들도 이 무서운 전염병을 피하지 못하고 스러져갔다. 81세 극작가 테런스 맥널리, 73세 `포크의 전설` 존 프린, 85세 재즈 피아니스트 엘리스 마살리스, 71세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 등이 최근 잇달아 부고를 전했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이지만 대중의 추앙을 받던 그들의 별세 소식은 대감염 시대 공포와 충격을 더했다. 전대미문의 바이러스는 100세 시대를 무색하게 만든다.

그래도 턱밑까지 쫓아온 죽음의 그림자가 거장들의 예술혼을 꺾지는 못한다. 62세 이탈리아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는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을 위해 부활절날 밀라노의 텅 빈 두오모 성당에서 홀로 `희망을 위한 콘서트`를 열었다. 백발에 쇠약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생명의 양식` `아베 마리아` `장엄 미사` `어메이징 그레이스` 등을 불렀다.

유년 시절 시력을 잃은 뒤 고통의 세월을 승화한 노래는 죽은 자를 위한 레퀴엠이자 산 자를 위로하는 선율이었다. 코로나19 사망자가 2만명을 넘긴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큰 울림을 줬다. 전성기 때 목소리의 윤기와 힘에 못 미쳤지만 인류애로 채운 보첼리 노래는 그 어느 때보다 성스럽고 아름다웠다.

세계에서 그림 가격이 가장 비싼 83세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프랑스 노르망디 자택에서 격리 중에 아이패드로 그린 수선화 그림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BBC에 공개하면서 "그 무엇도 봄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노년에 예술꽃을 피워 대중에게 희망을 전파하는 화가들도 있다. 얼마 전 서울 삼청동 초이앤라거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86세 영국 화가 로즈 와일리는 70대에야 비로소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천진난만한 그의 그림들은 사람들을 미소 짓게 만든다. 그는 대단하고 철학적인 예술을 지향하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과 기억을 끄집어내 일기처럼 그림을 그린다. 1950년대 중반 어느 날 입은 연노랑 수영복, 베이비시터를 해서 모은 돈으로 산 검정 드레스 등 과거 입은 옷을 담았다. 21세에 결혼해 가정주부로 살던 그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시작`이라는 것을 몸소 증명하며 2013년 런던 테이트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명예와 부를 좇지 않고 캔버스를 놀이터 삼아 자유롭게 그려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그림을 선물하고 있다.

미국 화가 빌 트레일러(1853~1949)는 평생 미국 앨라배마주 노예로 살다가 84세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늙고 병들어 노예살이에서 풀려난 그는 길거리 부랑자로 살면서 버려진 박스 종이에 연필로 그렸다. 평생을 같이한 동물들과 그를 괴롭히던 농장주를 우스꽝스럽게 그린 작품 2000여 점을 남기고 떠났다. 미국에서 그의 그림을 본 69세 서양화가 서용선은 "이제 나이가 들어 그림을 그리기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여든 살에도 그릴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림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감탄했다.

76세에 류머티즘관절염 때문에 실과 바늘을 내려놓고 붓을 든 모지스 할머니(1860~1961) 그림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웅변한다.

[문화부 = 전지현 차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