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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보여주라! 그러면 저축할 것이다.
기사입력 2020.03.20 18:26:39 | 최종수정 2020.03.20 18:27:42
만약 뜻하지 않게 100만원의 여윳돈이 생기면 어디에 쓸까?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술 한잔 할까, 배우자를 위해 깜짝 선물을 준비할까, 아니면 휴가자금으로 쓸까? 다들 당장 이 돈을 어디다 쓸까 하고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혹시 이 돈을 당장 쓰지 않고 노후를 위해 은퇴계좌에 넣어두려는 사람도 있을까? 많지는 않을 것이다.

겪어보지 않은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당장 눈앞의 유혹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려면 먼 미래를 내다보고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그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어칠은 이런 말까지 했을까. “앞을 내다 보는 것은 언제나 현명한 행동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멀리 내다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처어칠의 말처럼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저축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미래를 보여주면 저축을 더 많이 할까? 뉴욕대학의 할 허시필드(Hal E. Hershfield) 교수와 그의 동료들은 이 같은 발칙한(?) 생각이 맞는지 실험해 보기로 했다.

이들은 요즘 유행하는 가상현실과 아바타를 실험에 활용했다. 먼저 디지털 카메라 등을 이용해 실험대상자의 행동을 모니터 한 다음 가상현실 환경에서 실험대상자와 닮은 ‘아바타’가 이를 그대로 쫓아서 하도록 했다. 그리고 아바타의 행동을 실험대상자로 하여금 관찰하도록 했다.

실험은 두 그룹으로 나눠 진행됐다. 첫 번째 그룹 참가자들은 가상현실 환경에서 현재 자신과 닮은 아바타를 보도록 했고, 두 번째 그룹 참가자는 70세 정도로 나이든 미래 자신과 닮은 아바타를 관찰하도록 했다. 그런 다음 참가자로 하여금 전혀 예상치 않게 1,000달러를 갖게 된다면 다음 4가지 중 어디에 얼마만큼 할당할 것인가 하고 물었다.

1) 누군가를 위해 아주 괜찮은 물건을 산다.

2) 은퇴계좌에 투자한다.

3) 재미있고 사치스런 일을 계획한다

4) 당좌예금에 넣어 둔다.

두 그룹 중 은퇴계좌에 더 많은 자금을 할당한 것은 어느 쪽일까? 할 허시필드와 동료들은 실험에 앞서 ‘미래의 자신’를 본 참가자들이 ‘현재의 자신’ 본 사람들보다 은퇴계좌에 더 많이 돈을 할당 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실험 결과는 가설과 맞아떨어졌다. 가상현실 환경에서 현재 자신과 닮은 아바타를 본 참가자들은 평균 70달러만 노후를 위해 투자한 반면, 미래 자신과 닮은 아바타를 본 사람들은 은퇴계좌에 평균 172달러나 할당했다.

이제 은퇴설계를 하는 재무설계사 입장에서 큰 고민을 덜게 됐다. 가상현실을 활용하면 고객에게 노후대비 저축을 하라고 설득할 수 있다. 문제는 가상현실 환경을 구현하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그리고 고객들을 일일이 실험실로 오라고 하기도 쉽지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허시필드와 동료들은 가상현실 대신 ‘슬라이드 바’를 이용하기로 했다.

슬라이드 바의 왼쪽 끝에는 전체 급여에서 노후준비를 위한 사회보장(Social Security)과 건강보험(Medicare)에 기여되는 돈을 빼고 남은 현재소득이 비율(%)로 표시되고, 오른쪽 끝에서는 은퇴직전 소득에서 은퇴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을 보여 준다. 슬라이드 바 위에 있는 스케일을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양쪽 끝에 표시된 소득비율이 다이내믹하게 변화한다. 스케일을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은퇴 소득 비율이 늘어나는 대신 현재 소득 비율이 줄어든다. 반대로 커서를 왼쪽으로 옮기면 현재소득 비율이 늘어나는 대신 은퇴소득 비율은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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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다음 할 허시필드 연구팀은 슬라이드 바 아래에 실험참가자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반영한 아바타를 배치해 두고 아바타의 표정 변화에 따른 저축금액의 변화를 관찰했다. 실험은 두 번으로 나눠 진행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는 슬라이드 바의 왼쪽 아래에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닮은 젊은 아바타를 배치했다. 그런 다음 실험대상자가 현재에 더 많은 자금을 할당하려고 슬라이드 바의 커서를 왼쪽으로 이동하면 아바타가 환한 미소를 짓게 하고, 반대로 미래에 더 많은 자금을 할당하려고 커서를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찡그린 표정을 보여줬다. 그런 다음 노후를 위해 얼마나 저축하는지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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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실험에서는 슬라이드 바의 오른쪽 아래에 나이든 아바타의 배치했다. 앞서 젊은 아바타 실험에서와는 반대로 나이든 아바타는 슬라이드 바의 커서가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웃는 표정을 짓고, 반대로 왼쪽으로 이동하면 슬픈 표정을 짓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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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이드 바를 이용한 실험에서도 가상현실 실험에서와 마찬가지로 나이든 아바타를 본 쪽이 노후대비 저축을 훨씬 더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급여에서 최대 10%까지를 노후를 위해 저축할 수 있도록 허락되었는데, 미래 나이든 자신의 얼굴 표정 변화를 살펴본 참가자들은 평균적으로 급여의 6.76%를 저축하기로 했다. 반면 젊은 아바타의 표정변화를 관찰한 참가자들은 급여의 5.2%만 노후대비 저축에 할당했다. 미래의 자신을 본 쪽이 노후대비를 위해 저축을 30%나 많이 하는 셈이다.

이와 같은 실험 결과를 보면 은퇴설계를 업(業)으로 하는 재무설계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해 졌다. 고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미래를 끊임없이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래를 위해 저축하는 것은 옆 집 아저씨나 뒷집 아줌마를 위해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김동엽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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