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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교수의 살아 있는 경제강의 [손현덕 칼럼]
시장과 균형에 매달리다
기업가와 기업가 정신을
놓친 경제학교과서
경제학의 비극이다
기사입력 2021.05.05 00:07:01 | 최종수정 2021.05.05 01: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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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문제에 대한 칼럼을 쓰면 늘 문자를 보내주시는 은사가 있다. 대학 시절 경제학원론을 가르친 분이다. 칼럼이 실린 어느 날 아침 어김없이 메시지가 왔다. 이날은 좀 특이했다. 글에 대한 촌평이 1, 교수로서의 자성이 9였다.

긴 글을 간추리면 이렇다. "요즘 기업가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는 청년들이 있나? 거의 없지. 그런 점에서 우리 경제학 교수들이 `내 탓이오`란 고해성사를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 대부분 경제학원론에 기업가라는 단어도 없고, 기업가정신이란 단어는 더욱 없거든. 그렇게 경제교육을 하니."

기억이 없다. 40년도 더 된 일인데. 교수님께 물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무슨 경제학 책입니까? 요즘 학생들이 맨큐의 경제학을 배우지 않나요? 거기도 그런가요?"라고.

핀잔이 돌아왔다. "요즈음 경제학과 1학년 학생이 배우는 경제학원론 책이 뭐냐고 나한테 묻나? 내가 정년 퇴임한 지 12년이 지난 것을 모르고." 그제서야 성급한 엄지손가락을 후회했지만 이미 전송된 문자를 어떡하겠는가.

아차 싶은 마음에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경제학 책을 찾아봤다. 없는 건 아니나 그야말로 아주 간단하게 언급했을 뿐이다. 자본주의 경제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이윤이라면서 정부는 기업가적 노력에 찬물을 끼얹지 않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는 정도. 맨큐도 예외는 아니었다. 맨큐의 경제학원론 2판 인덱스(index)를 보니 `기업가` `기업가정신`은 없다.

은사는 그래서 직접 `소프트 경제원론`이라는 책을 썼다고 한다. `기업가정신` `기업가의 경제적 기여`를 한 장(chapter) 넣었다.

그는 당시를 회고한다. "어느 날 제자 한 명이 푸념하는 거야. 경제학이 쓸모가 없는 것 같다며. 그 말을 듣고는 내가 엉터리 경제원론을 강의했다는 반성을 하게 됐지. 그래서 살아 있는 경제 강의를 위한 교재를 만들어 보고자 한 거지."

사실 기업가와 기업가정신이 애당초 경제학에서 배제된 것은 아니다. 거시경제학의 아버지라는 케인스는 1936년 일반이론에서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을 언급하면서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업가정신이 거시경제 변동과 성장의 핵심임을 갈파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기업가정신은 `생산`이란 용어에 파묻혔고, 생산은 노동과 자본을 양적으로 투입하면 기계적으로 결과물이 나오는 함수로 취급됐다. 기업가정신이란 게 노동과 자본의 질을 변화시키는 마술을 부리게 되면 결과물은 달라질 수 있는데도 말이다.

매일경제신문에 `기업과 경제`라는 고정 칼럼을 연재하는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경제학에 기업은 없고 시장만 있다. 시장에선 균형이 중요하고 기업은 정상 이윤에 만족해야만 균형이 유지된다. 그러나 잘나가는 기업은 그러지 않는다. 초과 이윤을 노리며 야성적 충동을 발휘하는 균형파괴자이다. 모험투자도 서슴지 않는다."

시장의 균형을 중시하는 경제학이 기업가를 외면한 이유가 바로 이것일지도 모른다. 그 바람에 기업가는 경영학 분야로 자리를 옮겼다. 경제학은 일개 학과로 남고 경영학은 비즈니스스쿨로 덩치를 키웠다. 그는 이를 경제학의 비극이라고 했다.

경제학 교수와 경영학 교수 사이에 유명한 농담이 하나 있다. 어느 날 두 교수가 비행기에 탔다. 비즈니스석 자리가 하나 남아 두 교수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항공사 직원이 절묘한 판단을 했다. 경제는 영어로 이코노미니 경제학 교수님은 이코노미석으로, 경영은 비즈니스니 경영학 교수님은 비즈니스석에 앉으시라고.

그러고 보니 열흘 후면 스승의 날이다. 올해는 꼭 은사님을 찾아뵙고 식사 한 끼 대접해야겠다.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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