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렇겠지만 식당은 친절한 곳이 좋다. 식사가 편안해야 소화도 잘되고 그 자체가 휴식이 된다.

그래서 필자는 아무리 소문난 맛집이더라도 줄을 너무 길게 서는 곳은 피하는 편이다. 욕쟁이 할머니 식당 같은 곳은 말할 것도 없다. 어차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음식을 먹는 것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제각각이겠지만 어쨌든 필자는 그렇게 식당을 선택한다. 지나치게 번거롭거나 심지어 욕을 먹으면서까지 음식을 사먹고 싶지는 않다.

얼마 전 한 음식점에서 벌어진 일이다. 점심시간을 맞아 필자 일행을 포함해 총 4 테이블에 손님들이 자리를 잡았다. 주문을 하고, 음식을 내오고, 손님들이 다시 뭔가를 부탁하고. 일상적인 식당 장면이 펼쳐지는가 싶더니 얼마 안가 여기 저기에서 성난 고객들의 고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4곳의 테이블 가운데 무려 3곳에서 손님들이 격한 항의를 한 것이다.

한 테이블에선 물을 가져다 달라고 10여 차례나 부탁했지만 종업원이 들은 체도 안한게 문제였다. `뭐 이런 식당이 있냐`는 항의가 이어졌다. 다른 테이블에선 식탁에 오른 음식이 문제였는데, 과거보다 현격히 수준이 떨어지는 식재료를 쓴 것이 발단이 됐다. 식당 주인을 불러오라는 호통과 함께 `이걸 어떻게 먹으란 거냐`, `돈 더 줄테니 예전대로 해달라`는 단골인듯한 고객의 불평이 터져나왔다. 나머지 한 테이블은 주문한 음식이 너무 늦게 나온게 화근이었다. `곧 나온다`는 말과는 달리 30분 넘게 음식이 안나오자 손님들은 잔뜩 뿔이 났다.

사실 이런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필자의 테이블도 사정은 비슷했다. 주문한 음식은 비교적 빨리 나왔는데, 식재료를 비롯한 음식 수준은 예전의 기억이 무색할 정도로 허술했다. 자리에 앉아마자 서너차례 부탁했던 물과 물컵은 메인요리가 나오고도 한참 후에야 당도했다.

50대 후반이나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종업원은 고객들의 요구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응대하려는 의지조차 없어 보였다.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기계적으로 음식만 갖다 날랐을 뿐이다. 그러다가 고객들이 항의가 쏟아지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를 지켜보는 60대 여주인도 속수무책이었다.

점심식사 내내 함께 간 일행들의 얼굴에 어이없다는 표정이 그려졌다. 몇년전 좋은 기억을 바탕으로 이 식당을 추천했던 필자로선 민망할 뿐이었다.

살다보면 친절하지 않은 식당을 만날 수도 있는 법이다. 이런 경우 해결책은 간단하다. 다시 안가면 된다. 굳이 인상쓰고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다. 이 식당도 마찬가지다. 필자도 어지간한 이유가 아니고서는 다시 찾지 않게 될 것이다. 하루 세끼 가운데 한끼 망친 것 뿐이므로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서둘러 점심을 마치고 식당을 문을 나섰다.

그런데 오래도록 가슴이 묵직했다. 불쾌했다기 보다는 그 식당 종업원과 주인에 대해 짠한 마음이 들었다. 안타까웠다고 해야할까. 자영업 대란과 고령화 위기가 겹친 우리 나라,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기준으로 한국에서 자영업을 하는 사람의 숫자는 총 552만1000명이다. 전년 2월보다 무려 21만3000명이나 늘어났다. 숫자만 접하면 금새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과거 통계를 같이 들어다보면 숫자의 의미는 명확하다. 어마어마한 증가세다. 고용시장이 꽁꽁 얼어붙다 보니 너도나도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양극화 현상은 더욱 뚜렷해질 수 밖에 없다. 잘 되는 극소수 자영업자와 잘 되지 않는 대다수 자영업자가 각각의 순환을 하는 것이다.

장사가 잘 되지 않는 자영업자의 단기적인 선택은 원가절감이다. 식당에 비유하자면 값싼 식재료를 사용하고, 종업원을 해고해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다. 필자가 갔던 식당이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점심 시간에 단 한명의 종업원이 십수명의 손님들을 응대해야 했다. 당연히 서비스의 질(質)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주방장의 음식솜씨가 좋아도 식재료의 수준이 떨어지면 어쩔수 없다. 재료가 좋아야 맛도 제대로 나는 법이다. 싸구려 재료로 음식을 만들면 손님들은 금새 알아챈다.

이런 상황이 일정 기간 지속되면 손님이 줄어들고, 영세한 자영업자들은 곧 자금난에 봉착하게 된다. 자영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출이 늘어난 것은 숫자로도 입증되고 있다. 신한·국민·우리·하나·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서 지난 2월 자영업자에게 대출해진 총 잔액은 182조원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1년 전(166조원)보다 16조원(9.8%)이나 불어났다. 금융권 주변에서는 다음번 금융위기의 진원지로 자영업을 꼽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엎친데 덮친다고 해야하나. 자영업이 수난시대에 접어든 가운데 고령화 현상까지 겹쳤다. 나쁜 방향으로 상승효과를 일으키는 고약한 악재다. 한국의 고령자 빈곤율은 50% 수준으로 OECD국가 중 1위다. 한국의 어르신들은 부실한 연금 탓에 나이가 들었어도 모아둔 돈이 모자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자녀들이 예전처럼 봉양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먹고 살기 위해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문제는 노인에게 적합한 일자리 수가 제한돼있다는 사실이다. 어르신들의 경륜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충분하다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상당수 고령자가 나이에 걸맞는 않는 단순육체 노동에 종사하는게 엄연한 현실이다. 젊어서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나이들어 처음 하다보니 시행착오가 만만치 않다. 보이지 않는 비용이 존재하는 것이다. 미리 필요한 교육을 받고 뛰어들면 좋겠지만 하루가 아쉬운 상황에서 쉽지 않은 얘기다.

이런 현실은 고령자가 자금난에 직면한 자영업 고용주와 연결 됐을 때 한층 심각해진다. 앞서 거론했던 식당 종업원이 딱 그런 경우로 추정된다. 고용주 입장에선 비교적 수월하게 싼 임금의 근로자를 얻을 수 있어 좋고, 근로자 입장에서도 전문적인 기술이나 지식 없이도 일정한 소득을 올릴 수 있으니 좋다. 하지만 서투른 일 처리로 매출이 늘어나기는 커녕 오히려 고객이 줄어들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공멸의 시나리오로 흐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경우에 대한 교과적인 해법은 종업원에 대한 직무교육 강화다. 그러나 자금난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 입장에서 이런 비용과 노력을 감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자영업자 수난시대에 푹 스며든 고령화 시대의 암운. 우리 주변에서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 지금부터라도 진지하게 대비해야 한다.

[이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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