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경제학 시즌2-10] "만약 내가 신이었다면, 나는 `청춘`을 인생의 끝에 두었을 것이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프랑스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가 남긴 말이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춘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고, 그것의 소중함을 몰랐던 것에 대한 프랑스 대문호의 아쉬움과 통찰력이 담긴 말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청년 이미지는 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몇 해 전 서울대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것만 보더라도 한국에서 청년에 대한 인식은 힘들고, 열악한 시절로 그 의미가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청년 시절 먹거리와 입을거리를 걱정해야만 했던 기성세대에게 1990년대와 2000년대에 태어난 젊은이들은 풍족함 속에 자라 나약해 보이기만 한다. `우리 때는 말이야…` 라는 말을 하면 꼰대라는 취급을 받을 것 같아 차마 입 밖으로 표현은 못해도 젊은이들을 보면 미덥지 못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지금 청년들의 고민이 앞서 살펴본 일부 기성세대들의 생각처럼 도전 정신이 부족하고, 어려운 일을 싫어하는 유약함 때문에 생겨난 문제일까? 실제로 우리나라의 전체 실업률은 3%대지만 만15~29세의 청년 실업률은 2010년 이후 7%대에서 9% 후반으로 꾸준히 상승해왔다. 현재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평균 실업률이 9% 수준이 것을 감안하면 지금의 청년 실업률이 얼마나 높은지를 가늠할 수 있다. 이처럼 높은 공식 실업률마저도 군복무와 대학 진학, 공무원 시험 준비 등으로 경제활동인구에서 빠져 상당히 축소된 결과이다. 청년들 가운데 공식적으로 일자리를 찾지는 않았지만 일자리가 주어진다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잠재적인 구직 인구를 포함해 새로 고용지표를 산출하면 그 결과는 더 심각하다. 2017년 청년들의 체감 실업률은 22.7%로 한국의 평균 체감 실업률 11.1%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청년들은 노동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해마다 노동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을 노동시장에서 흡수하려면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하다. 물론 기존의 노동자들 가운데 고령으로 퇴직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충분하면 젊은 노동자들은 이들의 자리를 대체하면 일자리를 충분히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인구학적으로 한국의 베이비부머는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에 태어나 은퇴 시점이 가까워지긴 했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은퇴를 시작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에서 청년들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려면 경제가 충분히 성장해 고용이 창출돼야 하는데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최근에는 2% 중반으로 후퇴하고 있다. 그마저도 지금의 경제 성장은 기술 진보와 자본 집약적인 산업에 집중돼 경제 성장률에 따라 일자리가 증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고용탄성치가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이와 같은 고용 시장의 여건 변화를 보면서 청년들이 일자리 찾기가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중소기업이나 제조업체에서는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뉴스를 접하면 요즘 젊은이들은 고생을 모르고 자라서 `까다롭다` `고생을 더해 봐야겠다`라는 생각을 다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3년부터 노동 시장의 수요 변화는 사무직의 일자리보다 생산직의 일자리가 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생산직의 일자리는 57만개에서 꾸준히 감소해 2017년에는 30만개 이하로 하락했다.

또 그동안 청년 실업의 원인은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이 달라 발생하는 `일자리 미스매치`가 주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KDI(한국개발연구원) 최경수 선임연구위원이 2013년 OECD에서 실시한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결과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년들의 평균 역량은 33개 회원국 가운데 언어 능력이 최상위권이었으며, 수리와 문제 해결 능력은 중위권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젊은이들의 역량은 중앙값이 집중돼 있으며 그 편차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청년 가운데 역량이 부족한 하위 1%의 수준은 언어, 수리, 문제 해결 능력 모두 OECD 회원국 가운데 4위 혹은 6위로 최상위 수준이었으나 상위 1%의 역량은 25위에서 29위로 최하위 수준을 나타냈다. OECD가 시행한 역량 평가가 우리나라 청년들의 업무 역량을 완벽하게 대변할 수는 없지만 한국의 경우 상대적으로 청년들의 역량 편차가 크지 않고 중간 지점에 집중돼 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영화나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를 보고 분석한 청년들의 인터넷 댓글을 보면 웬만한 영화 평론가나 스포츠 전문가 못지않은 수준 높고 날카로운 비평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만큼 한국은 지식이 보편화, 고도화돼 있는 전문사회이다. 따라서 청년들의 역량 차이는 크지 않으며 대체로 우수한데 선호하는 일자리가 한정돼 있으니 취업 경쟁은 치열하고, 참여자들의 스트레스도 클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또 40·50대의 노동자들은 남은 경제활동 연수가 비교적 짧은 만큼 직업을 선택할 때 경력보다는 당장 받을 소득을 더 우선시한다. 그러나 청년의 경우 첫 직장을 얻어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짧게는 20년에서 30년 이상 경제활동을 지속해야 한다. 따라서 청년들은 현재 받을 임금 못지않게 취업 후 맡는 업무가 향후 자신의 경력과 진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도 중요한 결정 요소가 된다. 따라서 비정규직이라도 대기업의 사무직을 선호하는 현상을 단순히 요즘 세대의 `허영`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뿐만 아니라 일을 해본 이력이 없는 청년들은 노동 시장에서 외부자(outsider)로서 경력 직원들에 비해 정보비대칭이 커 일자리를 찾기는 더욱 어렵다. 본격적으로 구직활동을 시작한 이후 일자리를 찾는 기간이 길어지면 이는 채용시장에서 부정적인 신호로 작용해 시간이 갈수록 일자리를 찾기가 더 어려워지는 실업의 이력현상(unemployment hysteresis)이 나타난다. 이 같은 이력현상이 해소되지 않으면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쌓지 못한 청년들은 경기가 상승해 호황 국면에 접어들어도 여전히 실업 상태에 놓이기 쉽다. 2019년 6월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취직률과 실직률이 모두 하락해 노동회전율이 글로벌 위기 이전 29.2%에서 최근 26.4%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신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기가 더 어려워졌음을 시사한다. 또 2018년 한국은행의 김남주 연구원이 발표한 `청년실업의 이력현상 분석`에 따르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처음 진출하는 25~29세 남성 구직자들 사이에 이력현상이 존재하는 것을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의 청년들이 노동 시장에서 `실업자` 상태로 놓이는 것을 부담스러워해 졸업을 연기하는 행동을 두고 독립을 두려워하는 `캥거루족`이라고 폄하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우리 젊은이들도 나이가 들어 장년이 됐을 때 프랑스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도록 기성세대들이 청년의 처지를 더 헤아리고 양보하는 관용을 베풀면 어떨까.

[최병일 경제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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