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나 상담을 통해 다양한 퇴직자분들을 만난다. 퇴직 이후의 삶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남성 퇴직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바람이 있다. “퇴직하면 고향으로 내려가서 살고 싶습니다.”이 말을 들을 때마다 필자는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정말 꼭 그렇게 하고 싶으신가요?”
이 질문에는 의심이나 반대의 의미가 담겨 있지 않다. 다만 그 선택이 안고 있는 리스크가 결코 가볍지 않고, 충분한 준비 없이 결정할 경우, 실패 확률이 생각보다 높다는 점을 상담 현장에서 여러 차례 확인해 왔기 때문이다.
남성 퇴직자들이 가장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 중 하나가 흔히 ‘자연인’으로 불리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그만큼 자연 속에서 보내는 노후에 대한 로망이 크다는 뜻일 것이다. 대부분 어린 시절을 시골 고향에서 보냈고, 그 시절의 기억은 대개 긍정적인 추억으로 남아 있다. 명절이나 제사 때 고향을 찾으면 마음이 푸근해지고, 오랜 친구들과의 만남도 반갑기 그지없다. “퇴직하면 언제든 내려와라”는 덕담을 들을 때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미래가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하지만 문제는 이 지점에 있다.
‘가끔 찾는 고향’과 ‘매일 살아야 하는 고향’은 전혀 다른 공간이라는 사실 이다. 미국의 한 심리학자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스트레스의 강도를 수치로 측정한 ‘사회 재적응 평가척도’를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배우자의 사망은 100점, 퇴직은 45점, 생활조건의 변화는 25점, 이사는 20점의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이를 단순히 합산해 보면, 퇴직 후 거주지를 옮기는 선택은 퇴직(45) + 생활조건 변화(25) + 이사(20) = 총 90점에 이른다. 이는 배우자를 잃는 것에 버금가는 강도의 스트레스 상황이라는 뜻이다. 퇴직은 그 자체만으로도 정체성의 변화, 관계의 단절, 일상의 붕괴를 동반한다. 하루의 리듬이 사라지고, 사회적 역할이 약화되며, 소속감과 존재감에 대한 질문이 밀려온다. 이런 시기에 이사라는 또 하나의 불확실성을 더하는 것은, 결코 가볍게 볼 선택이 아니다.
“고향이니까 괜찮을 줄 알았죠.”
실제로 퇴직 후 고향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온 분과 상담한 적이 있다. 이분은 고향에 친구도 많고 친척도 있어 적응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내려가 살아보니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렸다.
“도시에서 평생 일했으니 돈도 좀 모았을 테고, 고향에 왔으니 기부도 하고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더군요.”
그는 또 이런 말을 덧붙였다.
“만약 낯선 시골이었다면, 미리 어떤 일을 할지,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준비했을 겁니다. 그런데 고향이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했던 게 오히려 독이 됐어요.”
‘익숙함’이 준비를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준비를 미루게 만들 뿐이다.
그래서 필자는 퇴직 후 주거 문제에 대해 한 가지 원칙을 권한다.
“가능하면 지금까지 살아온 곳에서 계속 살아가라.”
이를 영어로 표현하면 ‘Aging in Place’라 할 수 있다. 이 개념은 1970 ~ 80년대 미국의 환경심리학과 노년학 분야에서 등장했으며, 세계보건기구는 이를 “자신이 살아온 집과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고 독립적이며 편안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단순히 요양시설에 가지 않고 집에 머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익숙한 환경과 이웃 속에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며, 존엄성과 자율성을 지키는 삶을 뜻한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거주 환경과 공간에 대한 조정은 필요하다. 다만 ‘이동’이 아니라 ‘조정’이 핵심이다.
첫째, 지금까지 살아온 지역을 가능한 한 유지한다는 전제가 중요하다.
병원, 상점, 교통, 이웃과의 관계는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자산이다.
둘째, 미니멀라이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부부가 살기에 30평대 아파트는 결코 작지 않다. 출가한 자녀나 손자들이 올 때를 대비해 큰 집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녀들이 오지 않는 이유는 방의 크기 때문이 아니다. 관리 부담과 비용만 늘어날 뿐이다.
셋째, 연령이 섞여 사는 지역을 선호할 필요가 있다.
시니어 타운이 편안할 수는 있지만,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만 있는 공간은 삶의 활력을 떨어뜨릴 위험도 있다. 젊은 세대와 일상이 섞일 때 오히려 삶의 에너지가 유지된다.
넷째, 대도시보다는 중소도시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의료·문화·편의시설을 누리면서도 생활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은 곳이 적지 않다.
물론 거주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선택이 잘 맞는 사람도 분명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로망’이 아니라 ‘현실’이고, ‘기억’이 아니라 ‘현재의 삶’이다.
퇴직 이후의 삶은 새로운 시작이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지금의 나에게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곳, 관계와 일상이 유지되는 곳, 그곳이 바로 노후의 최적지일 것이다.
[윤형진 칼럼니스트, 한국생애설계사(CLP), 울산 동구 노동자지원센터 생애설계 상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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