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80세 넘어 혼자 된 어머니가 따로 살고 계신데, 집을 가보니 세제, 화장지 등 생필품에다 라텍스 매트리스, 화장품, 홍삼 등 고가의 물건들이 집 한구석에 가득이라고 한다. 무슨 물건이냐고 여쭤보니 근처 홍보관에서 사 온 것이라고 하시는데,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제품의 질도 떨어지는데 큰 돈을 쓰고 계신 것 같아 걱정이라고 하소연한다.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떴다방”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뉴스도 접한다. “떴다방”이란 3~6개월 단위로 개업과 폐업을 반복하는 영업행위로 그 자체로는 문제가 아니지만 조악한 물건을 허위·과대 광고로 시중가보다 훨씬 높은 고가로 판매하는 것이 문제다.

필자가 근무하는 울산 동구 노동자지원센터에서는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생애설계 및 노후준비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만난 한 퇴직자는 퇴직 후 지인으로부터 높은 수익을 보장해 준다는 말만 믿고 투자를 했다가 원금조차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 몇 달은 약속한 수익금이 꼬박꼬박 들어와 전혀 의심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속았다는 생각에 자신이 너무 바보 같고 한심해 보인다고 한다. 전형적인 다단계 금융사기의 피해자인 셈이다.

한때 ‘바보상자’라고도 불렸던 TV는 여전히 우리집 거실 한 편에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다. 도리어 크기는 성장을 반복해서 거실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울 정도다. TV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은 실시간으로 세상의 모든 정보를 보여준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편리해진 만큼 우리가 감당해 내야 할 리스크는 그 이상으로 증폭하고 있다.

종종 유명인들의 부고가 유튜브나 SNS 상에 올라온다. 깜짝 놀라 다시 검색해 보면 가짜뉴스로 확인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조회수를 올려 수익만을 노린 유튜버들의 무모한 행동이다. 이처럼 바로 진실이 드러나는 가짜뉴스도 있지만 쉽게 판별되지 않는 가짜뉴스를 만들고 유통하며 심지어 오랫동안 사람들의 뇌리를 점령해 버리는 경우도 많다. 더 심각한 경우이다.진짜 가짜는 가짜를 진짜라고 한다.

머리가 빠져 가발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진짜 자기 머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짜도 아니다. 문구점에 가면 모형화폐를 살 수 있다. 진짜처럼 생겼지만 놀이를 위한 도구로 쓰일 뿐이다. 이러한 가짜는 스스로 자신이 가짜임을 인정하므로 사실 큰 문제는 아니다. 진짜 문제는 가짜인데 진짜라고 속이는 경우이다.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가짜뉴스, 가짜상품, 가짜광고를 내놓으며 진짜라고 강변하며 현혹한다.

“철들자 망령이다“라는 말이 있다. 또 ”사람은 60은 넘어야 철이 든다“라고 주장한 고령의 철학자도 있다. 위 두 문장을 연결하면 ”사람은 60세가 넘으면 철은 들지만 바로 망령에 빠질 수 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퇴직을 하는 60세 정도는 되어야 사리를 분별하며 어른으로서 성숙한 모습을 보이게 되지만 동시에 정신이 흐려져 말과 행동이 정상의 범위를 넘어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만큼 잘못된 판단과 선택의 위험성이 증가한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책을 더 가까이 하기를 바란다.

한때 책이 정보와 지식의 가장 중요한 전달 매체인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인터넷, 유튜브, AI 등이 대체하고 있다. 책보다 훨씬 빠르게 많은 정보와 지식을 제공한다. 그럼에도 독서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여전하다. 아무리 AI가 발전해도 인간의 판단과 선택을 대신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선택은 단지 정보와 지식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 선택의 주체인 인간의 사유와 사고체계의 총합이다.

책은 일방향의 지식 공유 채널이 아니다. 저자의 의도가 중요하지만 그것에만 매물되지는 않는다. 밑줄과 메모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지혜를 창조한다. 그것이 책이 가진 힘이고 존재 이유다. 꼭 다독을 권하지는 않는다. 완독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서문만 읽어도 되고 목차만 들여다 봐도 괜찮다. 책을 가까이 하는 습관 자체가 편협된 사고와 편견에서 멀어지고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 낼 수 있는 힘을 길러줄 것이다.

또 하나는 말보다는 글을 우선시 하기 바란다.

주위에는 말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말 할 기회가 많아지고 말하는 것에 더 익숙해진다. ”말 한마디면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말이 정말 중요하긴 하지만, 말이 가진 위험성도 크다. 즉흥적, 감정적이거나 지나치게 주관적이며 강압적일 가능성도 있다.

생각을 정리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방법은 말보다는 글이 적합할 수 있다. 사람들과의 소통에서도 글은 좀 더 객관적이고 이성적일 수 있다. 물론 글이라고 해서 작가만 쓸수 있는 거창한 것만은 아니다. 문자 메세지, SNS, 게시글, 댓글도 어엿한 글이다. 인스턴트 메신저를 활용하여 소통하고 블로그에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올리기도 하고 SNS에서 일상을 글로 공유한다.

글이 가진 장점 중 하나는 기억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기억은 유동성이 크지만 글은 그렇지 않다. 의도적으로 훼손하지 않는 한 변하지 않는다. 글이 더 객관적이고 이성적일 수 있는 이유이다.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글을 통해 자신의 선택을 말하기 바란다. 그것이 세상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 펜은 칼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윤형진 칼럼니스트, 한국생애설계사(CLP), 울산동구 노동자지원센터 상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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