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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나의 인생을 살고 싶다.
기사입력 2019.05.23 13:39:22 | 최종수정 2019.05.23 18:01:06
“달이 차면 기울듯 아무리 예쁜 꽃도 가장 붉을 때 잎이 지는 법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날이 지나고 나면 그다음 수순을 밟아야 한다. 하지만 기우는 달과 지는 꽃에도 숨겨진 능력은 있다. 우린 그것을 연륜이라고 말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 판단의 노련함이 그것이다.

산을 오르다 보면 더 오르고 싶어도 오르지 못하는 정상이 나타난다. 체력이 남았다고, 마음이 원한다고 없는 산을 쌓으며 오를 수는 없다. 아쉽지만 산 정상에서 살게 아니라면 더 늦기 전에 내려와야 한다. 때를 놓치면 하산 길은 위험해진다. 어둠이 길을 묻어 버리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도 다르지 않다. 때가 되면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비켜서야 한다. 문제는 아름답고 의미 있게 헤어지는 방법이다. 사람은 누구나 만날 때는 축하의 마음으로 박수를 치지만, 헤어질 때도 그래야 한다는 약속은 없다. 동료들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회사 입장에서도 아쉬움이 남을 만큼 중요한 사람이었다면 은퇴라는 이별의 시간은 감동으로 채워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냥 한 사람이 퇴직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현역 때 아무리 직급이 높았어도 퇴직하면 그냥 아저씨일 뿐이다.

지난 주말도 평소와 다름없이 우리 집 강아지 “뽀돌이와 미소”를 데리고 아내와 저녁 산책을 나갔다. 늘 다니는 길이라 익숙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댕댕이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애들이 요구하는 대로 따라다니는 산책이다. 그러고 보면 댕댕이를 위한 산책인 셈이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양짓 말 가로수길 벤치에 어르신들이 유독 많이 앉아 계셨다. 뜬금없이 아내가 한 마디 질문을 던진다.

[아내] 자기야 이제 몇 년 남았지?
[나] 뭐가?
[아내] 은퇴
[나] 아~ 2022년이니까 4정 정도 남은 셈이지
[아내] 벌써…… 그러네. 우리 남편도 늙었네
[나] 얼씨구.... 근데 왜?
[아내] 아니... 고생했다고
[나] 칭찬을 다하시네. 그건 그렇고 은퇴하면 수입이 줄 텐데, 괜찮아?
[아내] 왜, 또 돈 벌려고?
[나] 그럼 쉬나? 쉬면 병 나, 그리고 아직은 젊잖아?
[아내] 그만큼 일했으면 이제 쉬어도 되는 거 아냐?
[나] 물론 쉬어야지,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애들도 아직 출가 전이고, 그 보다는 은퇴 후에 글 쓰면서 여행하는 산업강사 살 거라고 했잖아, 기억안나?
[아내] 기억나, 고마워서 그러지. 근데 아까 벤치에 계신 분들 보니까, 많이 쓸쓸해 보이더라.
[나] 한 때는 날리던 분들도 있을걸, 세월이 일도 빼앗고 건강도 빼앗아 가니까 그렇겠지.
[아내] 에휴, 여하튼 건강 관리 잘하자.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토 달지 말고?
[나] 양파, 당근, 야채, 과일 많이 먹고 운동 열심히 할게.
[아내] 알긴 아네.

우리 부부는 그렇게 잔소리와 농담을 섞어가며 집으로 돌아왔다.

↓"저는 48년 동안 타인의 삶을 살았어요. 이젠 나의 인생을 살고 싶어요" 2018년, 외부 교육을 통해 알게 된 원로 연기자 박칠용 선생님의 고백이다(한국방송 탤런트 극회 /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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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픽사베이



그분의 말씀엔 울림이 있었다. 연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상 작가가 써주는 대본대로 극 중 인물에 집중해야 했기에 타인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70세를 코 앞에 둔 지금(2018년 기준 69세), 나를 위한 인생을 살겠다고 하시면서, 자신의 연예 인생 48년을 회고하며, 그 안에서 경험한 희로애락을 강의하고 계신다. 교육을 마치고 설렁탕으로 저녁을 같이 한 그분의 얼굴에서, 스크린에 비추어진 화려함은 보이지 않았다. 모자를 쓴 모습이 영락없는 이웃집 아저씨다. 하지만 선생님의 48년 연기자 인생 이야기엔 진한 슬픔이 배어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화려하게 빛나던 시절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기억 속에 묻혀 살 순 없다. 삶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인생 70대를 열고 계신 선생님은 오늘도 지난날의 그것들을 내려놓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계신다. 세상을 대하는 선생님의 자세에서 남다른 깊이와 지혜가 느껴진다.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강의 중에 하신 말씀 한 자락이 잊히질 않는다.

“나를 아껴라”

[이종범 금융노년전문가(R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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