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비부머의 퇴장 ③ ◆

베이비부머 세대는 제조업 등 전문 분야에 종사한 경험과 노하우가 있다. 저출산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서 제대로 된 실버인력 활용이 중요해졌다. 그러나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만드는 일자리는 고작해야 월급 20만~30만원 용돈 벌이로 그친다. 6일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가 제공하는 노인일자리는 `풀 뽑기` `재활용품 정리` 등 공공일자리가 주를 이룬다. 내년 정부는 노인일자리 80만개를 만들기로 했는데 이 중 60만5000개가 월급 30만원 안팎인 공공형 일자리다. 보수가 높고 실제 기업에 채용돼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민간형 일자리는 19만5000개에 불과하다. 비중으로 보면 공공일자리가 75%이고 시장형 일자리는 25%에 그친다.

인천 부평구에 위치한 자동차 코일매트 `차모아`를 생산하는 `아리아`. 2018년 20명이었던 직원이 2년 만에 83명으로 늘었다. 올해에만 30명을 추가 채용했다. 박노철 아리아 전무는 `노인인력활용`을 고속성장의 비결로 꼽았다. 아리아의 생산팀 55명 중 24명이 60세 이상 `어르신` 직원이다. 대다수가 쌍용자동차, 삼성중공업, GM대우 등 대기업에서 정년퇴직 후 재취업한 베이비부머 세대다.

박남일 씨(64)는 삼성중공업에서 부장으로 퇴직한 뒤 아리아에 재취업했다. 이곳에서 그는 자동차용 매트를 모양에 맞춰 절단하는 일을 한다. 그는 "예전 대기업 생산라인에서 일할 때 플라스마 절단기를 다뤘던 적이 있어 일을 쉽게 배울 수 있었다"며 "다른 동료들도 대부분 제조업체 경험자라서 일을 쉽게 배운다"고 말했다.

실버인력을 채용해 본 기업은 한결같이 "써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다"고 입을 모은다. 박 전무는 "중소기업이다 보니 젊은 사람은 안 오려 해서 사람을 뽑고 싶어도 뽑을 수 없고, 보통 군 입대 전이나 아르바이트 목적인 휴학생을 채용하다 보니 고용 연속성이 떨어져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웠다"며 "2018년부터 어르신들을 본격 채용하면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앞서 대기업 등에서 일해 습득 능력이 좋고 조직문화에 익숙한 게 노년층 인력의 또 다른 장점이다.

700만명에 육박하는 베이비부머가 차례대로 `노인` 연령에 진입하면서 이들을 위한 일자리 수요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발간한 `신노년세대 노동시장 전망과 노인일자리 수요 추계 연구`에 따르면 현재 123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노인일자리 수요는 2035년까지 꾸준히 늘어 158만2288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봤다.

노인일자리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꾸준히 늘고 있다. 2013년 24만개였던 노인일자리는 2018년 51만개, 2019년 64만개, 올해 74만개, 내년에는 80만개로 늘어난다. 매년 1조원 이상 재원이 투입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노인일자리 대부분이 `현금성 복지`에 가깝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3~4시간 일한 뒤 월 27만원을 받아가는 공공일자리가 대다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일자리를 흔히 `노인 알바`라고 부르는 이유다. 예전 세대보다 고학력에 고숙련 근로자 출신인 베이비부머의 일자리 욕구와 `미스매칭`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노인인력개발원에 따르면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0년생) 중 70%가 고등학교 이상 교육을 받았다. 이전 노년세대는 42%만이 고등학교 이상 교육을 수료했다. 발전된 의료 혜택을 받은 만큼 이전 세대보다 건강 상태도 훌륭하다. 베이비부머 중 90.6%가 `보통` 이상 건강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베이비부머 중 85%는 도시에 거주하고 있었다.

정부가 직접 공공일자리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전문가들은 기업이 직접 노인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령 근로자를 고용할 때 사업주 부담을 줄이는 정책을 통해 시장형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면서 "고령 근로자가 노동시장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대표적으로 4대 보험료를 정부에서 일정 기간 부담해주는 등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제조업체 아리아처럼 고령자 친화기업도 모범 사례다. 고령자 친화기업은 고령 인력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채용하는 기업에 1억원에서 최대 3억원까지 사업비를 지원하고 교육과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 같은 고령자 친화기업 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90억원에 불과하다. 공공일자리 8433억원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액수다. 강혜정 노인인력개발원 부장은 "개발원에서는 이렇게 크게 증가하는 노인층의 다양한 욕구를 정부 재정 지원을 통한 공공 노인일자리(2020년 전체 노인일자리 중 82.5%)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인식 아래 시니어 인턴십, 고령자 친화기업, 취업 알선 사업 등 지속가능한 민간일자리를 창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간 노인일자리는 장기적으로 공공일자리보다 예산도 덜 소요된다. 노인인력개발원 측은 "민간일자리는 예산을 1회 투입하면 추가 예산을 투입하지 않아도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창출되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공공일자리보다 예산이 덜 들어간다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획취재팀 = 이지용 팀장 / 김태준 기자 / 문재용 기자 / 김연주 기자 / 양연호 기자 /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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